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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기사입력 : 2019-10-16 20:23:36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우리 집은 양파 농사를 많이 지었다. 아버지는 일 벌이는 손이 크셔서 남의 논을 빌려서까지 짓기도 했다. 벼농사 없는 겨울 비수기에 양파는 정말 알뜰한 환금 작물이었다.

그런데 양파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수년에 한 번은 꼭 가격이 폭락하는 것이다. 당시 정부의 시장 관리가 부실해 농민들의 자율에 의존하다 보니, 과잉 생산에 따른 폭락과 그 피해를 피하기 힘들었다. 못다 판 양파는 집으로 가져와 마당에 황태덕장처럼 널어두고 팔릴 때마다 조금씩 출하했다. 이내 한여름이 오고 일부 썩어나기 시작한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기만 해도 그 썩는 내가 느껴졌으니, 보통 민폐가 아니었다. 썩은 것을 골라내는 일은 누나들의 몫이었다. 수줍은 소녀 시절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양파는 끊임없이 썩고, 식구들의 속도 그만큼 문드러졌다. 마치 끝나지 않는 시시포스(Sisyphos)의 형벌과 같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지긋지긋한 양파 썩는 냄새 속에서도, 새로운 가을 파종을 위해 씨앗을 담그셨다. 기가 찼다. 누군가 저 씨앗을 갖다 버리고 싶다 했을 때, 아버지는 ‘농사꾼이 한 해 농사 망쳤다고 손을 놓으면 누가 살아남겠느냐’고 혼내셨다. ‘농사꾼은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이 말은 내게 깊이 각인되었다. 아무리 상황이 절박해도 씨앗을 버리거나 먹어 없앨 수는 없다. 씨앗은 희망이며, 종의 지속을 위한 필수요소이니까.

요즘 기가 꺾인 기업인을 많이 본다.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을 따라잡기가 너무도 힘들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나 신제품의 개발은 벌써 손을 놓았다. 그저 시들어가는 기존 비즈니스만 의욕도 희망도 없이 꾸려나간다. 기업인은 산업의 농사꾼이고, ‘씨앗’은 기업의 새로운 역량이나 성장엔진이다. 기업인이 그 산업의 ‘씨앗’을 새로이 심고 키우겠다는 근성과 도전정신을 버리면, 기업인은 스스로의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그 기업은 물론 우리의 산업도 다시 살아날 수 없다. 기업인들이여~ 제발 그 ‘씨앗’을 버리지 말아주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심장만 남거들랑 그 도전의 ‘씨앗’을 지켜주오. 그 ‘씨앗’을 품은 그대 기업인들이 우리의 희망이오.

허성원 (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