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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에서 경남 희망 찾자] (3) 사회적금융 선두은행 스페인 ‘라보랄쿠차’

협동조합 전용 은행 시작… 컨설팅 통해 기업 성장 이끌어

인프라 부족으로 협동조합 대출 어렵자

기사입력 : 2019-10-20 20:52:56

6명이 모여 만든 작은 지역 협동조합 몬드라곤이 오늘의 초대형 협동조합 연합체로 발전하는 데에는 은행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몬드라곤 연합체에는 라보랄 쿠차(Labral Kutxa)라는 거대 협동조합 은행이 있다. 라보랄 쿠차는 개인이 아닌 공통의 이익을 지지하고 민주적이고 책임있는 결정을 통해 협동조합의 이익을 사회에 다시 투자하도록 유도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지난 4월 열린 라보랄쿠차 일반 총회에서 초민 가르시아(Txomin Garcia, 왼쪽) 라보랄쿠차 대표가 2018년 성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라보랄쿠차/
지난 4월 열린 라보랄쿠차 일반 총회에서 초민 가르시아(Txomin Garcia, 왼쪽) 라보랄쿠차 대표가 2018년 성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라보랄쿠차/

라보랄 쿠차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에서 세 번째로 큰 금융 기관이다. 2018년 기준 스페인 내 고객 수는 총 114만7805명이고 1928여명을 고용하고 있고 연결 기준 영업 이익은 1억3370만 유로(한화 약 1738억원)로 전년 대비 10.06%의 성장률을 보였다. 총자산은 245억 유로(한화 약 31조8500억원)이다.


라보랄 쿠차는 현재 일반 은행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영업 활동을 하고 있지만 1990년대 이전까지는 오직 협동조합만을 위한 은행으로서 기업 컨설팅과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며 기업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지금은 과거의 기능을 다른 협동조합에 이관하면서 본질적인 금융 기관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라보랄쿠차 본사 전경./라보랄쿠차/
라보랄쿠차 본사 전경./라보랄쿠차/

◇몬드라곤 최초의 2차 협동조합= 라보랄쿠차는 1959년에 호세 마리아 신부가 설립한 노동인민금고(까하 라보랄, Caja Laboral)로부터 시작된다. 스페인은 1939년 내전이 끝나고 1950년대까지 사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다. 당시 스페인은 6·25전쟁 이후 사회 인프라가 부족했던 1960년대 한국 사정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시기 몬드라곤 창립자인 호세 마리아 신부는 1956년 몬드라곤의 전신인 울고르를 만든 데 이어 은행을 설립했다. 당시 협동조합은 기존 은행의 대출을 받기가 매우 어려웠고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은행의 경영 개입으로 협동조합을 유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에 호세 마리아 신부는 협동조합을 유지하면서 금융 지원을 가능하게 할 협동조합 은행이 필수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탄생한 노동인민금고는 개인 금융 거래뿐만 아니라 협동조합의 설립과 발전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노동인민금고 설립 방식은 협동조합이 뭉쳐 협동조합을 만든 몬드라곤 내 최초의 2차 협동조합으로 이뤄졌고 울고르와 아라사테, 푼코 노동자협동조합, 산호세 소비자 협동조합이 공동 설립자로 참여했다.

◇금융·사회보장·기업지원 기능 한 곳에= 노동인민금고는 예금, 대출 등 기본 은행 역할 외에도 연금, 의료보험 등의 사회보장과 창업, 사업 확대 등의 기업 컨설팅에 힘을 쏟았다.

초기 노동인민금고는 금융 기능에 집중했고 협동조합의 적립된 기금을 활용해 1967년 ‘라군아로(Lagun Aro)’ 설립의 모태가 된다. 이후 라군아로는 노동자조합원들에게 의료, 산재, 고용, 연금 보험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갖는 강력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이밖에도 노동인민금고의 기업국은 협동조합의 설립과 경영지원을 직접적으로 관리하면서 일반 은행의 역할을 한층 확대하는 기능을 했다. 기업국은 행정, 재무, 법률, 생산, 제품 개발 등 사업 전반에 대한 지원을 펼쳤고, 이런 기업국의 기능은 지난 1991년 노동인민금고에서 분화해 LKS라는 새로운 협동조합이 전문적으로 맡고 있다.

◇협동조합 대상 강력한 협정 맺어 발전= 과거 몬드라곤은 협동조합의 느슨한 형태의 연합체로 유지되고 있었다. 협동조합 간의 실질적인 연대는 노동인민금고가 각 협동조합과 맺은 연합 협정을 통해 이뤄졌다.

연합 협정은 협동조합의 운영 방식을 규정했다. 내용에는 △협동조합의 목적은 각 협동조합의 재정능력의 범위 내에서 최대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 △성·정치적·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고용 차별 금지 △노동 임금 격차 통제 등이 포함됐다. 이 협정에 따라 회원 협동조합은 노동인민금고에 분담금을 내고 모든 은행 거래를 노동인민금고와만 해야 했다. 또 4년에 한 번씩 회계감사를 받는 규정도 포함됐다. 특히 몬드라곤의 가치와 원칙을 위반하는 협동조합과는 협정을 취소하고 거래 중단하는 강력한 조치도 있었다.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까지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인민금고가 협동조합의 설립과 자금 지원, 경영 기술 컨설팅 등 다방면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노력의 바탕으로 1980년 이전까지 협동조합이 크게 발전을 이룩하자 이는 노동인민금고의 자금 확대로 이어졌고 다시 그 자금은 다른 협동조합의 발전에 쓰이면서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냈다.

◇꾸준한 성장과 청년 창업 지원= 노동인민금고는 2012년 농촌 신용협동조합인 ‘Ipar Kutxa’과 합병, 라보랄 쿠차(Labral Kutxa)로 이름을 바꾼다. 이후 외적인 성장도 거듭해 한 해 2000만 유로를 몬드라곤 본부에 지원하고 있다. 라보랄 쿠차의 수익의 25%는 몬드라곤 본부에 기금으로 적립하는데 적립금은 2016년 1884만 유로, 2017년 1930만 유로, 2018년 2103만 유로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외적인 성장과 더불어 지역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Gaztenpresa 재단이다. 라보랄 쿠차는 1990년대 중반 스페인 바스크주의 청년 실업률이 50%에 육박하자 청년 실업자 지원 정책을 펼쳤고 2002년 Gaztenpresa 재단을 설립해 본격적인 지원에 나선다.

Gaztenpresa 재단은 창업, 금융, 통합 및 멘토링 프로그램 등을 지원한다. 설립 이후 2018 년까지 5300개 이상의 회사를 지원했고 95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지난해에만 415개의 회사 창업, 812개 일자리가 창출됐다. 재단의 지난해 창업 기업당 평균 투자액은 7만452유로로 집계됐다.


/하비에르 아이 국장 인터뷰/ “금융, 협동조합 성장에 필수, 사람 중심 분위기 만들어야”


△몬드라곤 발전에 있어 금융의 중요성은?

-지금의 몬드라곤이 만들어지는 데 금융은 상상할 수 없는 역할을 했다. 은행이 없었다면 협동조합이 성장할 수는 없었다. 금융의 궁극적 목적은 부와 일자리 창출이지만 돈보다는 사람 중심의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라보랄 쿠차는 민주적인 운영방식을 통해 균등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고 발전시키고 있다. 현재 라보랄 쿠차 내 최저-최고 임금 격차는 3.6배에 불과하다.

△최근 라보랄 쿠차의 주요 변화는?

-과거에는 사회보장 기능, 기업 육성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행이 너무 큰 분야의 역할을 맡고 있어서 위험 분산을 위해 분리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방식은 버리지 않고 있다. 최근 은행들의 지점 폐쇄가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고객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해 지점은 유지하며 인터넷·모바일 등 멀티 채널 전략을 펼치고 있다.

△협동조합 은행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

-라보랄 쿠차는 은행을 다른 방식으로 운영을 해도 충분히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스페인 전체 은행 중 인터넷 은행을 제외하고 소비자 만족도 1위, 지불준비능력 1위, 수익성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은산분리법으로 사회적금융에 설립에 어려움이 있다.

-노동인민금고 설립 당시에는 관련 법이 없어서 가능했지만 스페인도 현재는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의지와 교육이다. 한국도 분명히 돈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 중심의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일자리·환경·급여 등 사람이 중심이 되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능력을 배양하고 내부 인력을 성장시켜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금융을 한국 상황에 맞게 변형해 적용 가능할 것이다.

조규홍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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