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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사마의(司馬懿) 전략- 최주철(한국무역협회 경남지역본부장)

기사입력 : 2019-10-27 20:19:11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三國志) 연의’에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많은 영웅호걸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성격을 단적으로 비유한 예시가 있다. 울지 않는 수탉이 있을 때 조조는 필요 없다고 수탉을 죽이고, 유비는 울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하는 반면 사마의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다. 위·촉·오로 나뉘어 치열한 전투를 벌이지만 결국 혼란한 정국을 통일하는 것은 위나라를 계승한 사마의 후손의 진나라가 된다. 인내의 화신인 사마의가 요즘 많은 기업체로부터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다.

최근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 수출규제로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피터 자이한은 저서 ‘셰일 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 The Absent Superpower’에서 미국이 유지해오던 자유무역 체제가 과연 지속될 것인가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차기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여부와 상관없이, 셰일 혁명으로 바뀐 에너지 산업 구조로 인해 자국 보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더 심화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다수이다.

보호무역주의 기조 강화로 제품 생산을 위해 세계 각국 간 유기적 분업이 이루어졌던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의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 등 세계의 생산기지 역할을 해왔던 국가들은 내수 중심으로 구조를 바꾸고 있고 미국, 독일, 일본 등 선진 산업 강국에서는 ‘리쇼어링(re-shoring)’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경기에 영향을 주는 대내 요인 또한 만만치 않다. 올해 3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향후 10년간 생산인구 250만명이 감소할 전망이라고 한다. 우리 동남권(경남, 부산, 울산) 지역으로 한정시켜 보아도 마찬가지다. 2018년도 동남권 인구는 797만명으로, 2015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20~30대 인구 순유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곳곳에서 들리는 ‘일본형 장기 불황’ 또는 ‘디플레이션 우려’라는 말 역시 더 이상 흘려듣기 어렵게 되었다.

자국의 무역보호주의가 강화되고 생산인구가 감소하는 미래에는 어떠한 전략으로 대응해야 할까? 과거 한나라 말기의 혼란한 정국 역시 치밀한 전략과 대응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조조처럼 실사구시의 태도가 요구되기도 하고, 유비처럼 대의를 중요시하고 인재를 귀하게 여기는 리더십도 요구될 것이다. 하지만 사마의가 최대의 라이벌인 제갈량을 잠재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리는 것(도광양회)이었다.

실력을 기르며 때를 기다리는 정신은 혁신과도 일맥상통한다. 혁신은 기막힌 아이디어라기보다는 실천과 인내에 더 가깝다. 강화유리 ‘고릴라 글라스(Gorilla Glass)’를 생산하는 코닝은 160년 초장수 기업이다. 2001년 IT버블 붕괴로 30억 달러 손실이라는 위기 상황 속에서도 전체 매출액의 10.3%에 달하던 R&D 비용을 2002년에는 15.3%까지 끌어올렸다. 연구 없이는 미래도 없다는 경영진의 철학, 그리고 끈기가 바로 코닝의 장수비결이었던 것이다.

내부적으로 끊임없이 혁신하면서 인내하다 보면 역전의 가능성이 보이게 되지 않을까? ‘자신에게 현실의 상황이 불리할지라도 앞으로 세상에 쓰일 날을 기약하며 능력을 배양하고 심지를 올곧게 북돋우어 길러가라’라는 사마의의 메시지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최주철(한국무역협회 경남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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