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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시즌에 즈음하여- 이인규(소설가)

기사입력 : 2019-10-31 20:23:55

가을맞이에 시골은 꽤 분주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누렇던 들판은 어느새 베어지고, 농부들은 그 자리에 다른 작물을 심는 등 농사일에 끝이 없다. 어쨌든 하늘은 높고, 말(馬) 대신 사람들이 살찌며, 바람은 선선하다 못해 쌀쌀해지는 계절이 왔다.

이맘때가 되면 농부 외에도 분주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일 년에 단 한 번, 각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신춘문예 시즌이 왔기 때문이다. 빠르면 이달 중순부터 늦어도 다음 달 초순까지 그들은 이 황홀한 축제에 참여하게 된다. 농부가 가을에 키우던 작물을 수확하듯 이 땅의 문학인을 꿈꾸는 그들 역시 자신이 공들여 썼던 작품의 결과를 수확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다 알다시피 몇 년째 출판계는 불황이고 이제 사람들은 기성 문학인들의 책을 읽지도 사지도 않는 이 현실에서, 등단을 꿈꾸는 예비작가들은 왜 이리 많단 말인가. 신춘문예에 당선되려면, 매년 주류 신문사에 시는 평균 1000대 1, 소설은 최소 300~500대 1이라는 말이 있다. 지방 신문사도 조금 덜했으면 했지, 아마 마찬가지로 추정된다. 그만큼 지원자가 많고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혹시 그들은 신춘문예만 당선되면 일확천금을 벌고 이후 책만 내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환상에 잡혀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이 땅의 관료들이나 시민들이 작가라는 직업을 끔찍하게 여겨, 온갖 지원을 다 해주고 대우를 잘해준다는 믿음이 있어서일까.

이태 전, 필자가 사는 지역에 나처럼 귀촌한 소설가 두 명과 시인을 꿈꾸는 한 명, 이렇게 가칭 ‘귀촌 문학회’를 만들어 함께 참여했다. 회비도 없고 정관조차 없는 가난한 문학회였지만, 서로의 글과 정보를 공유하며 그런대로 재미있게 꾸려나갔는데, 그중 한 명이 올해 봄에 자신이 살던 도시로 떠나가 버렸다. 신춘문예는 아니었지만, 권위 있는 문예지에 등단한 그는 작년에 첫 소설집을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결국 돈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돈 안 되는 소설 이거, 계속해야 하나요?” 하며 마지막 술자리에서 그가 내뱉은 자조 섞인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그뿐만 아니다. 시골에서 알게 된 J는 대학 졸업 후에 오로지 소설만 쓰겠다고 유명 문인의 사숙을 자처하며 그곳에서 결혼도 미룬 채 청춘을 보냈지만, 운이 안 좋았는지 등단이 늦었다. 그래도 그는 기죽지 않고 죽자사자 소설을 써서, 아르코(arko) 창작 지원 공모에 당선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작년 겨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며 시골 고시원에 들어간 후 아직 소식이 없다.

하긴, 십 년 전에 미국 소설가 필립 로스는 ‘향후 25년’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들며 ‘소설은 컬트적인 취향을 가진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전락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최근 들어 그의 말이 들어맞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지만, 아직 15년이나 남았으므로 미리 걱정하지는 않는다.

앞의 두 사례가 다소 부정적이라 예비작가들의 기를 꺾어버렸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먼저 작가 생활을 해 본 경험자의 기우로만 여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번에 설령, 자신의 시나 소설 등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더라도 그대들의 나이가 젊다면, 섣불리 전업 작가로 나서지 말아 달라는 충고의 말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이래저래 결전의 날이 왔다. 그간 지원자들은 자신의 엄중한 시간을 투자하고 피를 말리며 자신들의 꿈을 향해 훌륭한 작품을 썼을 것이다.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

이인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