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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몸의 피처럼 소중한 전기- 최규하(한국전기연구원 원장)

기사입력 : 2019-11-06 20:22:09

전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기를 설명할 때는 흔히 ‘물’에 많이 비유한다. 수도의 경우 수압을 전기의 전압으로 비유한다면 수돗물의 흐름은 전류로, 수도꼭지를 여는 정도는 저항으로 각각 나타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와서 ‘전기’에 대한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려면, 이제는 그 비유를 조금 더 찐하게 해야 할 것 같다. 인체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피(血)로 말이다.

우리 몸에서 피의 중요성은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삶 속에서 전기 역시 엄청 중요하다. 과학기술기반 사회일수록 전기는 혈액처럼 나라 곳곳으로, 또 지속적으로, 그리고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만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 인체의 생존과 관련하여 ‘골든타임’이란 한계시간이 있는 것처럼, 전기에도 골든타임은 있겠지만 안정적 공급을 생각하면 한순간이라도 용납할 수 없다고 함이 오히려 옳겠다.

심장이 일정한 박동수로 몸의 각 기관에 혈액을 보내는 것처럼, 전기의 심장인 발전기도 초당 60주기의 맥동수로 전기를 만들어 내보낸다. 전깃줄에 크기나 주기가 맞지 않는 나쁜 전기가 흐르게 되면, 전기 장치들도 인체와 같이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와 같은 질환이 생겨버린다. 우리가 다쳐서 피를 많이 흘리면 생명이 위험한 만큼 많은 전기가 흘러 누전 또는 과열되면 장치가 폭발되거나 화재가 나는 등 큰 위험에 놓일 수 있다. 신체의 장기도 나빠지면 치료하거나 어쩔 수 없이 이식까지 해야 하듯이 전기 장치도 오래 쓰다 보면 그 부품의 수리나 교체가 당연히 필요하다.

피와 전기가 또 유사함은 어떻게 그것이 만들어지느냐에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먹고 불규칙적으로 살며 만들어진 피는 우리의 몸을 병들게 만들지만, 몸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고 적절한 운동과 함께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만들어진 피는 우리를 건강하게 해주어 무병장수까지 할 수 있다. 전기도 마찬가지다. 석탄과 석유 등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는 많은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를 발생시켜 우리의 사회와 지구를 아프게 한다. 근래에는 가스발전, 열병합발전 등 새로운 방법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데, 특히 태양광과 풍력 등을 이용한 친환경적인 발전 방식으로까지 그 생산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서 전기는 몸의 피와 많은 유사점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 존재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5G통신, 인공지능, 컴퓨터, 첨단 전기의료장비 같은 첨단 기술 및 장치들은 모두 전기를 기본으로 한다. 최근 전기 없이 움직이던 물건들조차 전기로 작동될 만큼 많은 부분에서 달라지고 있다. 주방의 가스레인지도 인덕션장치로, 거리의 가솔린이나 경유를 사용하던 차들도 전기차로 바뀌니 말이다. 냉장고, 세탁기,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전기밥솥, TV, 전등, 시계, 컴퓨터는 물론, 집밖의 신호등, 전철 및 고속철까지 전기로 작동한다고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겠다. 그만큼 현대의 삶이란 전기라는 혈액을 공급받으며 하루하루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사막에 가서 밤하늘을 쳐다보면 하늘의 은하수가 그리도 또렷했던 것이었는지 또 그렇게도 밤하늘에 별이 많았었는지 새삼 놀란다. 멀리 사막까지 갈 것도 없다. 주위의 전기 스위치를 모두 꺼보자. 전기가 완전히 사라져서 없는 ‘전기사막’에 잠시 머물러보자. 밤이 이렇게도 짙었었는지, 밤하늘에 별이 이렇게나 많았었는지를 쉽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잠시의 감상도 어느새 전기 없음으로 인한 극도의 불편함으로 바뀐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마치 살면서 공기와 물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안정적으로 공급되는 전기의 소중함마저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3기(氣) 즉 ‘공기’, ‘습기’, ‘전기’가 없다면 사회는 물론 우리 인간의 삶도 영위하지 못할 것이다. 밤에 수많은 별과 은하수를 보기 위해 굳이 ‘전기사막’에 살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없으리라.

최규하(한국전기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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