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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가이 포크스’ 가면- 이현근(문화체육부 부장)

기사입력 : 2019-11-07 20:18:29

최근 홍콩에서는 송환법으로 촉발된 시위사태와 관련해 복면금지법이 생겼고, 이를 어길 경우 최고 1년의 징역형을 받게 되거나 370만원의 벌금을 내야 하지만 시위는 더 격화되고 있다. 시위대는 독재정부에 맞서 혁명에 나서는 V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브이포벤데타’에서 주인공이 썼던 짙은 콧수염의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거리에 나섰다. 영국 저항의 상징인 가이 포크스가 홍콩에 나타난 것이다.

▼가이 포크스는 실제 인물이다. 그는 1605년 가톨릭을 탄압하던 영국의 국왕 제임스 1세와 의원들을 국회의사당 지하실에 숨긴 화약통을 폭발해 암살하려 했지만 발각돼 체포된다. 반역자 취급을 받던 그는 각종 소설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묘사되면서 세계 각 시위 때마다 등장해 부활했다. 그는 대한항공 직원들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촉구할 때도, 월가의 탐욕에 저항한 시위 현장에도, 해커집단 ‘어나니머스’가 ‘파리 테러’를 주도한 극단 무장세력 IS에 사이버 선전포고를 할 때도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면은 저항의 모습이다. 하회별신굿에서 평민들은 하회탈과 초랭이, 각시탈 등을 쓰고 나와 지배계급인 양반들을 신랄하게 조롱했다. ‘봉산탈춤’에서는 말뚝이가 양반들의 비리를 풍자와 해학으로 비꼬는 등 탈춤은 가면극 형식으로 지배층의 부패를 고발하며 삶의 애환을 관객들과 함께 춤과 놀이로 해소하고 있다.

▼얼굴을 숨기고 가면을 쓴다는 것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익명성이다. 오히려 감춤으로써 제대로 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로’, ‘일지매’, ‘각시탈’,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 모두 자신의 얼굴을 감춘 영웅들이다. 영화 ‘브이포벤데타’에서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주인공은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선 안 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지”라고 외친다. 홍콩시민들은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 오랫동안 누렸던 자유를 잃을 위기가 오자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꺼내들고 멀고 먼 민주화 되찾기에 나서고 있다.

이현근(문화체육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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