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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선배에게- 박봉환(카피라이터)

기사입력 : 2019-11-14 20:43:57

선배! 그날 이후…. 다시는 이제 선배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망설이고 또 망설였습니다. 참으로 어이없지요? 저도 정말 이게 ‘실화’인가? 몇 번이나 곱씹고 또 곱씹어 봅니다. 선배는 빨강 티, 나는 파랑 점퍼를 입고. 그 거리 그 광장을 몰려다니며 때로는 죽을 듯이. 때로는 찌를 듯이…. 우리는 목이 터져라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누군가의 그 한마디 ‘레드’처럼. ‘레밍(Lemming)’이 되어. 그리고 오늘 선배의 따뜻한 전화를 받습니다. ‘잘 지내는가?’ ‘별일 없지?’ 그 단순한 인사전화 한마디에 내 모든 것이 녹아내립니다.

미안합니다. 선배.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외침. 그들의 속삭임까지. 나는 그들을 믿었고 또 믿었습니다. ‘더 큰 일을 해보겠다’던 그들의 출사표. ‘오직 한 길,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만을 보고 가겠다’던 그들의 그 용기를 진짜로 믿었습니다. 해마다 수천 건씩 발의하던 그들의 법률안을 믿었고, ‘일하지 않으면 돈 받지 않겠다’던 그들의 약속도 믿었습니다.

그런데 선배, 그거 아세요? 20대 국회 들어 지난 3년 동안 국회를 통과하여 실제로 법률에 반영된 법률만 해도 6527건이나 되는데, 왜 아직도 ‘송파세모녀’ 사건은 반복되는지요? 당시에는 너무 급해 부랴부랴 만든 비정규직 법들은 갈수록 완벽해져 가는데, 당시에도 ‘반쪽짜리’ 법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송파세모녀법’은 왜 또다시 ‘성북네모녀’를 막지 못하는 걸까요?

선배. 나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갑갑해서. 그날 그 광장에서 선배에게 소리쳤습니다. 선배가 적인 양. 선배가 그들인 양. 잠시 착각했습니다. 아니 잠시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들을 믿었기에. 그들을 너무 너무 믿었기에.

그런데 선배. 알고 보니 그것을 레밍(Lemming)! ‘레밍정치’라고 한다네요. 수십만 수백만 마리의 쥐들이 무리를 지어, 앞에서 달리는 우두머리 쥐를 따라,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채 광란하는 쥐떼 정치. 우리는 그 쥐 떼 중의 한 마리일 뿐이었다는 것을 선배는 익히 알고 있었는지요?

박봉환(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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