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거부의 길] (1710) 제25화 부흥시대 20

“치료는 받고 있나?”

기사입력 : 2019-11-15 07:59:55

작곡자 박시춘은 밀양 출신이었다.

영남제일루 앞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가 작곡한 ‘전우야 잘 자라’는 노래가 비장하여 군인들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져 누구나 부르는 애창가요가 되었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추풍령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이재영이 노래를 듣는데 성식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성식에게서 편지가 없었다. 이내 기차가 출발 준비를 했다.

빠아앙!

기적 소리가 길게 울리자 사람들이 물러섰다. 연심이 손을 흔들었다. 이재영도 손을 흔들었다.

덜컹.

기차가 움직였다. 연심의 눈에 눈물이 어리는 것이 보였다. 이재영도 가슴이 젖어왔다.

빠아앙!

기차가 목쉰 기적소리를 울리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연심이 점점 멀어져 갔다. 차창으로 부산역 풍경이 빠르게 흘러갔다. 이내 연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재영은 시트에 등을 기댔다. 서울까지는 거의 12시간이 걸릴 것이다. 기차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덜컹덜컹.

기차는 쉬지 않고 달렸다. 이재영은 부산역에서 손을 흔들던 연심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왔다. 이상하게 그녀의 얼굴이 슬퍼 보였다.

이재영은 그 후 연심을 다시 볼 수 없었다. 이재영이 서울로 돌아온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녀가 병이 들어 요정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재영은 먼 부산까지 다시 내려갈 수 없었다.

“연심이 무슨 병이 들었다고 하던가?”

부산을 자주 오가는 이철규에게 물었다.

“결핵이라고 합니다.”

결핵은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앓고 있었고, 한번 걸리면 쉽게 치료되지 않았다. 결핵에 걸리면 태반이 죽었다.

“치료는 받고 있나?”

“절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재영은 연심과 함께 해운대에 갔던 일을 생각했다. 그때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병은 빠르게 악화되었다.

“연심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해 겨울 연심은 양산 통도사 밑에 있는 허름한 시골집에서 쓸쓸하게 죽었다고 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