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거부의 길] (1712) 제25화 부흥시대 22

“아나스타샤…”

기사입력 : 2019-11-19 07:57:18

이재영은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미군이 폭격을 계속 하나 봐요. 비행기 소리 못 들었어요?”

“비행기 소리야 매일 듣는 거지.”

전폭기 소리는 거의 매일 듣고 있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가면 신문에는 ‘맹폭(猛爆)’이라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전폭기들이 맹폭을 하면 인민군이나 중공군들이 시체가 되어 나뒹굴었다. 전쟁 상황은 매일같이 보도되었다. 이재영은 시트에 등을 기댔다. 약간의 피로감이 느껴졌다.

“이 근처에 사세요? 누구 만나러 오셨어요?”

마담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재영이 그녀에게 불을 붙여주었다. 그녀는 가늘고 긴 양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마담은 이름이 어떻게 되나?”

“나타샤 정이라고 그래요.”

이재영이 웃었다. 이제는 유흥가에서 일을 하는 여자들이 서양식 이름을 짓고 있었다.

“왜 웃으세요?”

“나타냐 정이라는 이름이 참 좋소.”

“그래요?”

“웬일인지 사랑을 갈구하는 이름인 것 같소.”

“소설 속에 나오는 이름이래요.”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이지. 소설 읽었어요?”

“아니요.”

“나타샤는 쾌활하고 명랑한 아가씨야. 격정적인 사랑을 하고… 원래 이름은 아나스타샤인데 애칭이 나타샤야.”

“아나스타샤….”

마담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재영도 아나스타샤라는 이름이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다.

“전쟁 전에 무엇을 했소?”

“음악선생을 했어요.”

“허어.”

이재영은 가볍게 놀랐다. 이 여자에게도 사연이 있구나. 음악선생을 하고 있었다면 전문학교 이상 졸업했을 것이다.

“선생님은요?”

“나는 장사꾼이오.”

사업을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누가 틀었는지 축음기에서 ‘귀국선’이라는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해방이 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전쟁의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무슨 장사를 하시는데요?”

마담은 이재영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