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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 박봉환(카피라이터)

기사입력 : 2019-11-20 20:44:02

나도 물론 그런 적 있었지만…. 당신은 지금, 그 문 앞 그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겠지요. 주위는 마치 죽음보다 더 깊은 적막이 흐르고, 당신은 그저 번호와 이름만 새겨진 순번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겠지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당신 세대에게. 지난 5년 동안 그것은 두 배 가까이나 늘었고, 2018년 한 해만 하더라도 그 숫자는 무려 9만8434명에 이른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대는 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그대의 아픔을 말할 곳이 없다는 것을. 나는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것을 그냥 ‘우울증’이란 병명 하나로 대치해 버린다는 것을. 그리고는 그대. 그대의 흔적은 잠시. 높으신 나리들의 대정부 질문에 불려나와 ‘전년 대비 88% 증가’와 같은 수치로만 거론될 뿐이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알고 있습니다. 마치 내가 지금 그렇듯이. 그래서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그대의 아픔을 치유해 주는 곳은 없다는 것을. 그렇게. 그렇게…. 그대의 아픔과 그대의 외로움. 그대의 슬픔과 그대의 분노까지. 세상의 필요에 따라 잠시 불려왔다 불려갈 뿐이라는 것을. 다시 또 5년이 흐르고 10년이 흘러도 그대와 나의 병명은 세상의 주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냥 조금… 하는 일이 잘 안 풀려서’ ‘성격이 조금 그래서…’ 그렇게 그냥 치부된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러니 그대. 우리 이제 더 이상 슬퍼하지 맙시다. 해가 지면 밤이 오고 어둠이 되듯이. 그냥 그렇게 담담히 세상을 바라봅시다. 그대가 지금, 그 문 앞 대기실 의자에 앉아 순번표 모니터를 바라보듯이. 그렇게 그냥 세상을 조금씩 이해합시다. 그러다 ‘딩동!’ 우리 차례가 되면 ‘약은 잘 먹느냐’는 의사의 질문에 고마워하면서. 세상을 조금씩만 객관화합시다. 그렇게 우리.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안부를 묻다 보면, 지금 이 세상을 지배하는 최고의 권력도. 최고의 재벌도. 최고의 모순과 법률까지도…. 언젠가는 분명 저 세상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믿읍시다. 지금 저… 저 샛노란 은행잎처럼.

박봉환(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