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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714) 제25화 부흥시대 24

“가끔 그 사람 꿈을 꿔요”

기사입력 : 2019-11-21 07:52:50

전쟁은 많은 여자들을 일터로 내몰고 있었다.

“전쟁터에 나갔는데 돌아오지 않아요. 인민군에 포로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고… 방위군으로 끌려가다가 죽었다는 말도 있고….”

정연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남편은 국민방위군에 소집되어 남쪽으로 간 뒤에 소식이 없다고 했다. 국민방위군은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굵어 죽고, 병들어 죽고, 심지어 학살되었다고까지 했다.

국민방위군으로 끌려가다가 탈출한 사람들도 많았다.

“가끔 가다가 그 사람 꿈을 꿔요.”

“무슨 꿈인데?”

“그 사람이 불러서 문을 열면 강가에 서 있어요. 그리고 점점 멀어져요. 어쩐지 그 사람이 죽은 것 같아요.”

정연심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재영은 그녀의 가슴이 까맣게 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재영은 커피를 마시고 백화점에 있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백화점은 새해부터 영업을 하기로 했다. 점원도 새로 뽑고 판매방법도 교육했다.

김연자는 삼일그룹을 만들었다. 삼일상회, 백화점, 무역회사, 삼일요식, 삼일미곡을 산하에 두었다. 각 회사마다 대표를 따로 두고 사무실도 따로 두었다.

삼일그룹에 회장제를 도입하여 이재영이 회장이 되고 이철규가 부회장이 되었다. 회장 밑에는 비서실을 두었다. 이재영의 개인 비서실은 운전기사, 수행비서, 김연자가 따로 근무를 했다. 그들 밑에 그룹 차원의 비서실을 두고 비서실장을 임명했다. 비서실장은 최인규라는 사람이 맡았다. 총독부에서 박민수 밑에 있던 사람이었다.

삼일상회는 이정식이 맡고, 삼일백화점은 총무였던 변영식이, 삼일무역회사는 비서로 일을 하던 박민수, 삼일요식은 미월이 대표를 맡았다. 삼일요식은 삼일요식업을 줄인 말로 요정을 관리한다.

‘김연자가 그룹을 만드니 내가 한결 수월하군.’

이재영은 김연자에게 감탄했다.

박민수는 백화점의 영업을 재개하기 위해 미국 상인과 홍콩 상인을 만났다. 미국 상인은 본토에서 제품을 수입해 오고 홍콩 상인은 일본과 영국, 중국 상품을 수입할 수 있었다. 일본은 해방 이후 국교가 단절되어 밀수품밖에 거래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을 통해 들어올 수는 있었다.

이재영은 사무실에서 비서실장 최인규로부터 매일같이 그룹 산하 회사 업무를 보고받았다.

카페에서 돌아오자 창으로 눈발이 날리는 하늘을 응시했다. 눈이 그치고 나면 혹한의 추위가 몰아칠 것이다.

“회장님, 박불출 행장님께서 오셨습니다.”

김연자가 사무실에 들어와서 보고했다. 박불출도 서울에 돌아와 있었다. 전쟁으로 은행 업무도 마비되었으나 서울에 돌아와 업무를 시작하고 있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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