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작가칼럼] 극단의 시대- 유행두(동화작가)

기사입력 : 2019-11-21 20:34:03

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에게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했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한 사람만이 존재했던 절대 권력자 대통령이었다. 집에 뛰어가자마자 엄마에게 대통령 서거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그런 말 함부로 하면 잡혀가는 거라면서 대문 밖을 조심스럽게 내다봤다.

텔레비전에서는 며칠 동안 향을 피워놓은 화면만 내보냈다. 찰밥 도시락을 싸 갈 기대를 했던 생일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대통령에 대한 말 한마디조차도 입에 올리면 죄가 될 수 있었던 시대였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다.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우리 경제는 어마어마하게 발전했다. 독재군부 시대를 지나면서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려 문민정부를 만들었다. 이제는 지나가던 개가 잘못해도 대통령이 잘못해서인 듯 욕을 하고, 아무말잔치를 해도 표현의 자유인 듯 아무렇지 않게 되어버린, 그야말로 민주주의 시대가 되었다.

텔레비전 뉴스는 종일 정치 이야기가 차지하면서 극단적으로 나뉘어 대치되는 논쟁을 주고받는다. 내 말이 맞고 다른 사람의 말은 다른 게 아니라 틀려서, 귀를 틀어막고 일방적인 자기 말만 내뱉는다.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포털 사이트에 수시로 올라오고 극단적인 뉴스와 극단적인 댓글이 달린다. 어느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해야만 마무리될 것 같은 뉴스들.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는 어떤 게 진짜이고 어떤 게 가짜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정치에 관심을 가진 국민들도 많아졌다. 나라 걱정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도 주위에 심심찮게 생겨났다. 내가 지지하는 당이나 사람을 지지하지 않으면 가까웠던 사람들도 원수가 돼버린다. 몇몇이 모이는 자리에서 절대 하면 안 되는 금기어에 정치 이야기도 포함되었다.

이런 모습은 조선시대 붕당의 모습과 흡사해 보인다. 서인의 지지를 업고 반정을 일으킨 인조의 아들 소현세자는 당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허울로 보이지만 현종 시대에는 상복 문제로 남인과 서인의 예송논쟁도 있었다. 한때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던 장희빈 역시 숙종의 환국정치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해방 이후에도 극명하게 엇갈린 신탁 논쟁으로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었다.

이런 과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조선시대의 당쟁은 일본 역사학자들이 우리나라를 비하하기 위해 내세운 평가라고 지적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한민국의 당쟁은 조선시대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이 닮아가는 부분이 많아 보인다.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공격하기 위해, 오로지 상대 당을 짓밟고 올라서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대통령이든 국민이든 나라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겠는가.

내가 지지한 사람이 아니어서 어떤 일에도 협조를 하지 않는 정치인과 당파, 국익보다는 당익이 우선이 되어 국민들의 민심을 얻고자 하는 이 시대 정치판의 모습에 어느새 나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 당익보다 국익을 위해 일하는 정치인에게 내 작은 한 표를 던지고 싶은 것은 나 한 사람만의 좁은 생각일 뿐일까?

유행두(동화작가)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