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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3500쌍 짝 맺어준 백낙삼 마산 신신예식장 대표

52년간 1만3500쌍 백년가약 맺어준 ‘사랑 전도사’

[사람속으로] 백낙삼 신신예식장 사장

기사입력 : 2019-11-21 21:09:28

“지금까지 생각해보면 까마득한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참으로 짧다. 이제 한 달 뒤면 내 나이도 90이다. 하루하루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오다 보니, 삶이 즐거우니까 언제 90이 됐는가 싶다.”

백낙삼(89) 신신예식장 사장은 이렇게 운을 뗐다. 그는 이미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진 스타다. 백 씨는 1967년부터 지금까지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무료 예식을 진행해왔다. 올해 2월에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제8기 국민추천포상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신신예식장에서 결혼한 이들은 지금까지 모두 1만 3500여 쌍이나 된다.

백 씨가 결혼식 진행 및 주례, 사진사로, 백 씨의 아내 최필순(79) 씨가 예복 대여와 피팅, 부케 제작, 폐백 음식 준비 등을 맡아 예식을 진행해오고 있다. 백 씨는 89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력이 넘쳤다. 지금까지 그의 인생사를 들어봤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의 신신예식장 백낙삼 대표가 환한 표정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의 신신예식장 백낙삼 대표가 환한 표정으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어려웠던 가정형편이 나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 백 씨는 이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이 삶에서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부모님을 포함해 13명의 가족이 한 방에서 지내 왔던 날들에 대해 말했다. 또 31살이 될 무렵 늦게 혼인을 맺었지만 형편이 어렵다 보니 신부를 못 데리고 온 적이 있다며, 돌이켜보면 그때가 참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는 아내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나타내며 “그때 당시 기억으로는 피부가 참 고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10살 어린 아내를 소개받고 난 후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집에 인사차 들어갔을 때 아내가 제게 오히려 반했다고 들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드러냈다. 그는 “당시 아내에게 시집을 오지 마라고 했는데, 나하고 결혼하면 고생이 많을 거라고 했었다”며 “그러나 내가 고생을 안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아내는 그 한마디를 믿고 나에게 시집을 와 주었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딸이 시집갈 때 이불에 쌀 1말이 든 자루를 넣어 보내주면 성공한다?= 백 씨는 아내와 결혼 후 길거리에서 사진사를 하면서 8개월 만에 당시 창포동 일대에서 달셋방을 얻었다. 냄비 2개, 밥그릇과 수저 몇개가 살림의 전부였지만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마음으로 아내를 데려왔다고 당시의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 장모님은 이런 처지를 이해하시고 쌀 1자루를 이불 속에 넣어 보냈다고. 장인도 내가 당시 형편이 어려웠으니까 많이 서러워하셨는데, 돌이켜보면 장인 어른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장인이 돌아가시기 직전인 1960년대 후반, 직접 장만한 자가용을 한번 태워드리고 돌아가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꺼냈다.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지 간에 사업에 성공한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리 고향에서는 시집갈 때 이불에 쌀 1말이 든 자루를 넣어 보내주면 성공한다며 한동안 관습처럼 이어져 왔다는 재미난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예식장 사업을 시작한 이유= 그는 처음에 사진관으로 시작했는데 문득 본인처럼 돈이 없어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애태우는 분들이 주위에 많이 있어 늘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진관을 운영한다는 생각으로 사진촬영비만 받고 결혼식은 무료로 시켜드리고자 사업 구상을 했던 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던 중 어떤 사람이 사무실로 올라오더니 “전남 순천에서 예식장을 짓고 지나는 길인데 여기에 예식장을 하면 잘 될 것 같다”고 하더라며, 일이 잘 풀리려고 하니 이렇게 연이 닿더라고 신기해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그 사람에게 일을 맡기게 됐고 초창기 신신예식장이 탄생했다고 사연을 털어놨다.

“초창기에는 하객들이 앉을 의자도 없어 목수에게 긴 벤치를 맞추고 또 웨딩드레스도 사진촬영용으로 한 벌이 있었는데 그것을 억지로 입혀 예식을 올려줬다. 당시 첫 번째 손님인 신부의 오빠는 앞으로 이렇게 하면 잘 될 것이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며 “이후 정말로 손님이 많이 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주례가 아쉽다는 말이 나오면서 직접 주례를 시작했다. 당시 30대인데 젊은 사람이 주례 한다는 게 우습지 않나. 그래서 주례를 서기 위해 일부러 공부를 또 했다”고.

백 대표가 예식장 앞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김승권 기자/
백 대표가 예식장 앞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김승권 기자/

◇내 생애 마지막 소원은 장학사업 재건= 1988년에 백 씨는 동네 어른들의 추천으로 국민포장(효자)을 수상했다. 그때 받은 상금 50만원에 사비 50만원을 더해 ‘신신장학회’도 만들었다. 형편이 어려워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다.

“예식장 커피 자판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줬는데 자판기도 고장이 나고, 자금도 부족해져서 1992년까지 하고 접었다. 90 평생 소원이 있다면 ‘신신장학회’를 재건하는 것이다.”

그렇게 1989년 3월 신신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10만원씩 6명에게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4회에 걸쳐서 총 30여명에 장학금을 지원했지만 중간에 그만두게 된 것을 아쉬워했다.

◇생각지 못했던 사업의 위기= 신신예식장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 당시 예식장 사업이 허가제로 바뀌면서 고비가 찾아왔다. 당시 법이 바뀌면서 경남도 1호로 예식장 사업 허가신청을 했지만 허가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공문이 왔고 시청에서는 예식장 간판을 떼는 일이 발생했다. 계약은 밀려 있었는데 정말 암담했던 시기. “시는 불법이라고 간판을 떼고, 나는 다시 붙이고….”

그는 당시 1973년도를 그렇게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에 직접 질의를 했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예식장 허가를 받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입장을 전달받고 지금까지 선행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고.

또 IMF 외환위기 당시 사기를 당해 1억여원의 빚을 진 적이 있었는데 그 건으로 인해 예식장이 경매에 넘어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행히 외환위기로 손님들이 예식장에 몰리면서 그 많은 돈을 빨리 갚게 됐다고, 하늘이 도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백 대표가 예식장 앞에서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김승권 기자/
신신예식장 백락삼 대표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의 예식장에서 지난 2017년 부인과 함께 촬영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어느날 갑작스레 찾아온 불청객 ‘대장암’= 백 씨는 2005년도 당시 75세였는데 ‘대장암’을 우연찮게 발견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어느날 한 손님이 남편이 대장암 말기인데 죽기 전에 결혼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문득 본인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른 곳에서 진료를 보라고 하는 바람에 발견하게 됐다고. 이미 대장암 3기 정도 진단을 받고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에 급히 올라갔다고 당시 위급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지난 2005년 4월 종합병원에 전화했는데 운이 좋게도 다음날 바로 진료가 잡혔다. 이미 암은 진단이 된 상황이고 검사하면서 용종도 4개나 제거했다”며 “더욱이 운이 좋았던 게 종합병원에 입원하려면 보통 수개월이 걸린다고 하는데 당일 바로 입원실이 나왔다. 또 다음날 다른 환자가 사정이 생겨 수술도 바로 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또 그는 “당시 간호사들은 병원이 생긴 이래 이런 사례는 처음이라고 놀라워했다. 그만큼 천운이 따랐다”며 “당시에는 절대 죽을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병을 이겨냈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술후 며칠 만에 결혼식이 있어 주례를 섰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예식으로 기억한다”며 “이후 한 달여 동안 집에서 요양하고 6개월 동안 항암치료를 하면서 재활 의지를 불태운 결과 이렇게 완치가 됐다”고 말했다.

◇행복은 그리 멀지 않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 있다= 그는 주례를 서면 ‘행복해라. 열심히 해라. 사랑해라’며 이 부분을 되새긴다. “궁극적인 생의 목적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며, 또한 행복은 자기 주머니 속에 있듯이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부간 호칭인 ‘여보’, ‘당신’에서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아볼 수 있다. ‘여보’는 같을 ‘여’, 보배 ‘보’ 자로 보배와 같다는 존재의 의미로 아내를 금쪽같이 여기며 귀하고 아끼며 사랑하라는 뜻이다”며 “‘당신’은 마땅할 ‘당’, 몸 ‘신’ 자로 내 마음과 마땅히 몸도 같다는 의미로 남편을 부르는 말이다”고 말했다. 또 “사랑하는 사람끼리 결혼하고 더불어 살아가며 부르는 호칭에도 이런 깊은 뜻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보와 당신의 참뜻을 모르고 제대로 실천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며 “서로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그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ylee7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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