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세상을 보며] 지방채의 명암- 이준희(정치부 부장)

기사입력 : 2019-12-02 20:23:03
이준희 정치부 부장

옛말에 ‘빚은 얻는 날부터 걱정이다’는 말이 있다. 빚을 얻으면 그날부터 갚을 일이 걱정돼, 가능하면 돈을 빌리지 말라는 뜻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에게 빚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남의 돈을 빌려 적재적소에 투자하거나 이를 밑천으로 큰 수익을 올리는 등 좋은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지혜로운 삶이라 생각한다.

경남도가 내년에 지역경제 회생을 위해 257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한다고 한다. 도는 이 예산으로 도로, 각종 시설물, 하천 및 재해위험지구정비 등 사회간접자본 사업에 전액 투입할 계획이다. 도는 지난달 4일 2020년도 예산안 9조4748억원을 편성해 경남도의회에 제출했다. 이는 올해보다 1조2181억원(14.8%)이 증가한 역대 최대 규모로, 도의회는 2일부터 예산안 심의에 들어갔다.

경남도가 이처럼 많은 지방채를 발행하는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쓸 돈은 많은데 들어올 돈’이 없기 때문이다. 도의 세입요소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취득세 급감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올해 취득세는 1조1910억원으로 2015년에 비해 2381억원이 감소했다. 내년에는 이보다 170억원가량이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대형 국책사업과 정부 공모사업 대거 선정이 지방재정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국비지원 사업이나 정부 공모사업은 경남도와 일정 비율로 매칭이 이뤄져 지방비도 함께 오르기 때문이다. 내년 국고보조사업 중 국비지원액은 5조2547억원으로 올해보다 7679억원이 증액됐다. 이에 따라 국비 및 도비부담분도 지난해 1조218억원에서 1조589억원으로 늘어났다. 내년도 경남도 세입요구액은 8조2090억원이지만 고정경비를 제외하고 나면 실제 가용재원은 1558억원밖에 남지 않는다.

지방채는 지방자치단체가 공공 목적을 위해 재정상 필요할 때 지방재정법에 근거해 발행한다. 기획재정부는 각 지자체 예산 규모 등을 감안해 1년 동안 발행할 수 있는 지방채 한도를 정한다. 박성호 행정부지사는 지난 11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경남도가 내년에 지방채 2570억원을 발행한다 해도 채무비율이 8% 정도로 전국 17개 시·도 중 재정 건전성이 가장 우수해 도민들이 우려하는 재정건전성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2035년까지 향후 16년간 지방채 상환계획도 밝혔다.

경남도는 홍준표 경남도지사 시절이던 2013~2016년 ‘채무제로’를 선언해 1조3488억원에 이르는 많은 빚을 갚은 적이 있다. 채무재로 달성으로 홍 지사는 경남의 미래 50년을 마련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채무감축 정책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조정교부금, 지방교육세 등 반드시 편성해야 할 예산을 차기로 미뤘고, 지역개발기금의 누적 이익금을 전용해 채무상환에 활용했다. 또 복지분야 국비사업도비부담금을 시군에 전가시켰으며, 시군에 약속한 대형사업 지원 중단과 진주의료원 폐쇄, 무상급식 중단으로 인한 학부모 반발도 극심했다.

지방채 발행은 신중해야 한다. 무분별한 지방채 발행은 도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 선거를 앞둔 선심성 ‘퍼주기’식 복지정책은 더더욱 안된다. 하지만 ‘착한 채무’는 위기에 처한 경남 경제의 활성화와 민생경제를 살리는 마중물이 될 수 있기에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경남도가 도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예산편성으로 도민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경자년(庚子年)을 맞이했으면 한다.

이준희(정치부 부장)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준희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