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기자수첩] 만들어진 평화

기사입력 : 2019-12-03 08:00:33
이 슬 기 사회부

“전국에 다 다녀봐도 혐오세력 없는 이런 평화로운 축제는 처음이에요.”

경남에서 처음 열린 경남퀴어문화축제장, 인터뷰하는 사람마다 평화로운 축제라 평했다. 덕분에 참가자들은 손잡고, 춤추고, 노래 부를 수 있었다. 평소에 남들 앞에서 하지 못하는 일이라 행복하다며 활짝 웃었다. 그러나 그들의 400m 뒤에는 축제 참가자보다 5배 많은 사람들이 앉아 축제와 참가자들을 병들었다고 힐난했다. 동성애를 규탄하며 차별금지법을 반대했다. 서로는 서로의 존재를 거의 몰랐다.

창원 중심가에서 열리는 두 집회가 서로의 소식을 알기 어렵게 되는 데 경찰 1400여명이 동원됐다. 두 집회 참가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같은 날 열린 전국민중대회로 모자라는 인력을 공지로 충원해가며 경남경찰은 누구도 다치지 않은 집회를 완성시켰다. 축제장을 펜스와 인간벽, 경찰 버스벽으로 둘러쌌으며, 반대집회도 마찬가지였다. 행진 때는 행렬 양옆을 경찰이 호위하고, 반대 측 집회 쪽 창원광장 도로는 경찰 40여명이 뒤돌아 벽을 쌓았다. 400m짜리 창원광장을 벽으로 둔 데다, 인간벽과 차벽까지 더해졌으니 반대 측은 축제참가자들의 긴 깃발 끄트머리 정도 봤을지 모르겠다.

결국 만들어진 평화였다. 수많은 인력이 동원된 만들어진 평화. 당연히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맞았으나 이에 대해 씁쓸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냥 있어도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데 이렇게 서로를 보이게 하지 않고서야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목도하면서다. 있는 그대로의 평화는 어디부터 시작될 수 있을까. 이언주 국회의원과 같은 영향력 있는 인사의 신중한 발언도 한 몫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토요일 축제 반대 집회에 참가한 이 의원은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사랑하지만 행위를 반대하고 비판할 자유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어쩌나, 이 의원의 말부터가 존중과 사랑이 아니다. 그들의 행위 반대는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의 존재는 부정되기 쉽고, 그 사람들에게는 부정의 말이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가볍게 그들을 이해한다는 말에 만들어진 평화를 유지할 사람들만 더 고되다.

이슬기 사회부 기자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슬기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