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경남시론] 유감스런 패스트트랙 선거법- 박갑제(경남대 경제금융학과 학과장)

기사입력 : 2019-12-03 20:25:52

많은 사람들이 사상체계의 제1덕목은 진리이고 사회제도의 제1덕목이 정의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만큼 정의로운 것 혹은 올바른 것은 이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아무리 효율적인 사회제도라고 해도 정의롭지 못하면 폐기되거나 개선되어야만 할 운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어려운 수수께끼로 만들고 갈등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 정의로운 것이냐에 대해서 쉽게 합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럴 때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지혜를 참조하면 많은 도움이 된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즈는 정의에 대한 이론으로 유명한 학자이다. 그는 도덕적 측면에서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많은 계약들의 한계들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당사자들이 합의한 것만으로는 그 계약이 도덕적으로 타당할 수 없는 경우들도 있는데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보이지 않는 강압에 의해 이루어지는 계약들이 해당된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최저임금법 그 자체는 협상력이 강한 고용주와 그렇지 못한 고용인간에 혹여 만들어질 수 있는 사적계약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로서 해석될 수 있다. 그는 우리의 삷을 규정하는 사회의 기본구조에 관한 사회계약이 올바르게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이른바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황 혹은 완전한 무지의 장막 뒤에서 선택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럴 때 두 개의 정의 원칙이 도출될 수 있으며 하나는 표현 및 종교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의 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차등의 원칙이다. 차등 원칙은 사회의 가장 약자에게도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원칙을 의미한다. 물론 현재 자신의 상황과 사고를 형성해온 역사적 전개상황과 완전별개인 상황에 인간 개인을 설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올바른 합의와 계약은 결국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도출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존 롤즈의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한국 정치를 파국으로 이끌고 있는 패스트트랙 선거법은 완전한 무지의 장막 혹은 역지사지의 관점과 차등의 원칙이 반영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 자유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선거법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제도라면서 반대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민주당과 중소야당들은 새 선거법이 국회의석수를 득표에 비례하게끔 하는 민주적 제도로서 유럽에서도 시행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볼 때 여당과 중소야당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크지 않아 보인다. 입장을 바꿔서 여당에게 불리한 선거법이라면 여당은 새 선거법을 받아들이겠는가? 당연히 본인들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본인들도 받아들이지 않을 법을 다수결주의니 유럽에서도 시행하고 있다느니 혹은 다당제가 양당제보다 우월하다느니 아무리 주장해도 손해 보는 측에게는 들리지 않는 법이다. 만약 새로운 게임의 룰이 합의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는 그냥 기존의 룰을 유지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 룰은 기존의 선수들이 최소한 동의한 룰이기 때문이다.

정당들이 선거법에 따른 예상 의석수를 다투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정당은 게임의 룰이 자신들에게 유리할지 불리할지 따져야 한다. 우리들도 그렇지 않은가? 더 많이 노력해도 다른 사람보다 작은 보상이 돌아온다는 법이 적용된다면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정당의 정책과 활동은 우리의 삶과 무관치 않다. 특정 정당이 권력을 획득하면 그 정당의 정책이 우리의 경제생활을 바꿔 버리고 때로는 우리의 삶과 생존 여부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정당의 권력장악 의지를 우리의 삶을 개선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를 대리하고 있는 사람들의 강한 의지로 해석해야 한다. 내 지역구가 다른 지역구와 통합돼 아무리 외쳐도 나의 목소리가 작게 들리는 구조가 돼 버리면 어느 누구도 좋아할 유권자는 없다.

박갑제(경남대 경제금융학과 학과장)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