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가고파] 장작과 걱정- 조윤제(정치부 부장)

기사입력 : 2019-12-04 20:34:50

범어(梵語)로 잘 알려진 ‘산스크리스트(sanskrit)어’에서 불을 땔 때 쓰는 ‘장작’이라는 단어와 불안한 감정을 나타내는 ‘걱정’이라는 단어가 같다고 한다. 장작과 걱정, 두 단어 모두 명사지만 하나는 사물을 나타내고 하나는 정서와 감정을 나타내는데, 왜 같은 뜻으로 쓰일까? 처음 이 말을 들으면 뜻이 같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서도 두 단어가 왜 같은 뜻으로 쓰일까 잠시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지난여름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를 감상하는 내내 영화의 구성과 대본이 참 좋다는 것을 느꼈다. 필자는 논란이 된 영화의 역사적 사실성은 차치하고, 영화 자체로서의 구성과 대본의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 한글 창제라는 가슴 벅찬 소재를 다뤘다는 점도 그렇지만,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한글을 반포하는 임금은 물론, 그 임금과 거침없이 토론하며 백성들이 사용하기 쉬운 언어(언문·훈민정음)를 만들려는 승려들의 노력이 영화로 잘 그려졌기 때문이다.

▼‘장작’과 ‘걱정’이 같은 뜻이라는 것은 영화 ‘나랏말싸미’ 중간 부분쯤 언급된다. 극중의 중전(전미선 분)이 임금(송광호 분)에게 “신미 스님이 그럽디다. 장작과 걱정을 뜻하는 산스크리스트어가 같다고. 장작은 죽은 사람 몸을 태우고, 걱정은 산 사람 마음을 태우기 때문이라네요”라고 말한다. 장작과 걱정이 죽은 사람 몸을 태우고, 산 사람 마음을 태운다는 이 철학적 해석을 듣는 순간 이 두 단어가 왜 같은 뜻으로 쓰이는지 알 수 있었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이 서서히 저물고 있다. 연초에 세운 야심찬 계획을 이루지 못했는데, 한 장 남은 12월 달력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올 한 해 나 자신은 얼마나 행복했는가, 가족과 회사를 위해 얼마나 분발했던가,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시점이다. 오늘, 내년 경자년(庚子年)에 또 한 번 분발하자 다짐해 본다. 무엇보다 가정, 회사, 지인들, 그리고 독자여러분들이 ‘걱정’ 없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조윤제(정치부 부장)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조윤제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