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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연말 단상(斷想)- 이현근(문화체육부 부장)

기사입력 : 2019-12-05 20:25:06

연말이다. 새해를 맞아 이런저런 계획과 거창한 목표까지 세우며 다짐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어느덧 시간은 흘러 마지막 달력을 남겨두고 있다. 매년 조용하게 넘어간 해는 없었지만 올 한 해도 북핵과 북미정상회담, 조국사태 등으로 무척 시끄러웠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갔다. 찬란했던 봄과 뜨거웠던 여름, 오색찬란했던 아름다운 가을이 찾아왔고, 어김없이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운 겨울도 돌아왔다.

▼가난한 사람은 뜨거운 여름보다 혹독한 추위가 있는 겨울을 견디기 어렵다. 올 한 해도 경제사정은 나빴고, IMF 때처럼 살기 어렵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북한의 핵을 둘러싼 지정학적인 위기가 고조되고,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이지만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일본과 무역 갈등 등 악재까지 쌓이며 좀처럼 국가나 가정 형편이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청년실업은 줄지 않고, 눈치 속에 버티고 있는 50대 이상 직장인들도 가시방석이다.

▼창원 광장에는 이맘때쯤 매년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을 나눌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진다. 내년 1월 31일까지 총 73일간 92억6000만원을 모으는 것이 목표다. 목표 기부액 1%가 달성될 때 1도씩 오른다. 함께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지만 2년 연속 100도 달성에 실패했다. 예부터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며 국가마저 가난의 책임을 개인 탓으로 돌려온 탓인지 우리는 좀처럼 남의 삶에 개입하기 싫어한다. 나만 잘 살면 되지 남의 사정까지 배려하는 베품의 삶에는 인색하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의 시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에서 ‘버리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것이 있으려니 나누며 살다 가자/누구를 미워도 누구를 원망도 하지 말자…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갈 날도 많지 않은데/누군가에게 감사하며 살아갈 날도 많지 않은데/남은 세월이 얼마나 된다고 가슴 아파하며 살지 말자/버리고 비우면 또 채워지는 것이 있으니/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다가자’고 했다. 추기경의 말씀 정도는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겨울을 보내길 소망한다.

이현근(문화체육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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