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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소외된 평범한 사람들의 반격

저자, 브렉시트·트럼프 당선 등 이례적 사건

기사입력 : 2019-12-06 07:57:41

2016년 세계 정치사에는 이례적인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반대를 넘어서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된 사건이고, 하나는 정치의 변방에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사건이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유권자의 다수가 시대에 뒤떨어진 선택을 했다며 당혹해했다.

그리고 이런 선택을 한 지지자들에게 ‘시대에 뒤떨어진 못 배운 이들’ 심지어 ‘인종주의자’라는 비난과 조롱을 퍼붓기도 했다. 이들의 지지를 얻는 정치 세력은 손쉽게 ‘극우 정당’이나 부정적 의미에서 ‘포퓰리즘 정당’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두 선택 모두 역사의 진보에 역행하는 선택이고, 이성을 가진 시민들이 차분히 결정하였다면 그런 선택을 내리지 않았을 거라는 시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 가까이 지나 2020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두 사건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가고 있다. 브렉시트는 영국 의회의 난맥상 속에서 협상의 진전이 없는 상태로 의회의 무능함을 입증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는 좌충우돌하는 가운데에서도 높은 재선 가능성을 선보이고 있다. 유럽 각국에서는 기성 중도 좌우파 정당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며 양극단에 위치한 대중주의적 정당들이 약진하고 있다. 한편으론 세계 곳곳에서 혐오와 불신의 정치가 확산되어가고 있다.

브렉시트나 트럼프 당선으로 표출된 현상을 그저 시대와 동떨어진 ‘비정상’이 돌출된 것이라고 치부해서는 앞으로 펼쳐질 정치 격변의 시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오랫동안 중도 좌파 성향의 언론인으로 활약해 온 저자는 이런 현상이 엘리트 중심의 정치 영역에서 소외되어 왔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책에서 저자는 영국의 유권자들을 ‘섬웨어(Somewhere·저학력 저소득층)’와 ‘애니웨어(Anywhere·고학력 고소득층)’라는 틀로 구분해 이를 설명한다.


애니웨어는 주로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고, 대학 졸업 뒤에는 전문직에 종사하며 런던이나 외국에 산다. 이들은 오늘날 문화와 사회의 지배자다. 이들은 지구상 어느 곳(anywhere)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이들이다.

반면 섬웨어는 지방에서 나고 자라 먹고사는 사람들로, 뿌리를 중시하고 급격한 변화에 불안을 느낀다.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든 탓에 점점 가난해지고 있는 저학력 백인 노동자가 다수이며 점점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고향과 같은 특정한 어떤 곳(somewhere)을 떠나선 안정적인 삶을 담보할 수 없다. 저자는 여러 통계에 기반하여, 애니웨어는 영국 전체 인구의 대략 25%, 섬웨어는 50%를 차지하며, 그 사이 중간 계층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지난 20~30여 년 이상의 기간 동안 쉼 없이 확산되어 온 EU 통합을 비롯한 세계화의 논리는 애니웨어에게는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반면 같은 기간 섬웨어의 삶은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공론장에서 섬웨어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애니웨어의 목소리가 곧 다수의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이는 비단 영국과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현상은 서유럽 전반에 퍼지고 있으며, 한국 사회도 비슷한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이 심해지고 있지만 적절한 타협점이 나오지 않으면서 섬웨어의 반격으로 유럽은 현 세대가 사라지기 전에 독재 정치는 물론 인종과 종교를 이유로 한 대량 학살을 경험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저자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수도권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지방 강화에 힘쓰고, 선거 제도 개혁을 통해 섬웨어의 목소리가 의회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굿하트 지음, 김경락 옮김, 원더박스, 2만2000원

이명용 기자 my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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