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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727) 제25화 부흥시대 37

“이거라도 써요”

기사입력 : 2019-12-10 07:54:40

이재영은 학교에 다닐 때부터 동래성에 와보고 싶었다.

“비가 오는데 괜찮겠어요?”

“많이 오지도 않는데 뭐.”

“이거라도 써요.”

영주가 양산을 폈다. 겨울에 양산을 왜 가지고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요긴했다. 이재영은 그녀가 편 양산을 들었다. 미국의 어떤 여자가 쓰던 것일까. 양산은 분홍색 바탕에 장미꽃 무늬가 화려했다. 영주가 이재영의 팔짱을 끼었다. 이재영이 돌아보자 생긋 웃었다.

‘영주는 눈웃음을 칠 때 더 예쁘구나.’

이재영은 영주와 동래 거리를 걷는 것이 기분 좋았다.

“동래성은 왜 보시려는 거예요?”

“당시 동래부사가 송상현인데 무덤이 청주에 있어. 임금이 송상현의 충절을 가상하게 여겨 나라에서 가장 좋은 길지에 묻어주라고 했대. 그래서 청주에 묻었는데 옛날에 한 번 가봤어. 그런데 신기하더라고…. 송상현의 무덤 앞에 두 개의 무덤이 있는데 그게 모두 첩의 무덤이야.”

이재영은 송상현의 기이한 무덤 형태를 잊을 수가 없었다.

“본처는요?”

“본처는 송상현과 나란히 묻히지 못했어.”

“왜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송상현의 첩들 중에 한 여자는 송상현을 따라 순절하고 한 여자는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왔는데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는 거야. 그래서 나라에서 절개를 지킨 첩들이 가상하다고 표창을 한 뒤에 송상현과 함께 묻어주었다는 거야.”

영주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첩과 본처에 대해서 생각이 많은 것 같았다. 이재영도 그 문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이내 동래성에 이르렀다. 동래성은 허물어져 성곽만 남아 있었다. 이재영은 폐허가 되어버린 동래성을 보자 씁쓸했다. 건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성터만 있는데 잡초가 무성했다.

‘세월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구나.’

이재영은 여관으로 돌아와 온천을 했다. 온천이 따끈따끈하여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온천을 하고 나오자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저녁이나 먹고 돌아가지.”

이재영은 영주를 데리고 식당으로 갔다. 온천장 근처에 설렁탕집이 있었다.

“여관을 잡았는데 자고 가지 않아요?”

영주가 이재영을 따라오면서 물었다. 온천을 한 영주의 얼굴이 뽀얗다. 설렁탕집으로 들어갔다.

“요정이 더 편하지 않아?”

이재영은 설렁탕과 수육을 주문했다. 설렁탕집에는 손님들이 많았다.

“모처럼 밖에 나왔는데 자고 가요.”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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