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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슬기로운 음주생활- 강지현(편집부 차장)

기사입력 : 2019-12-10 20:28:41

모임, 회식이 잦아지는 연말이다. 송년회 문화가 많이 변했다지만 회식자리에 술이 빠지는 경우는 드물다. 벼룩시장구인구직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8명이 연말에 평소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잦은 술자리와 모임이 이유 중 하나였다. 연말 스트레스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직장상사, 직장 송년회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술을 강제적으로 권하는 분위기’를 꼽았다.

▼허원 강원대 교수가 쓴 ‘지적이고 과학적인 음주탐구생활’에 따르면 우리나라 애주가들은 2014년부터 주세를 3조원 넘게 내며 ‘애국 음주 생활’을 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연간 한 사람이 약 10.2ℓ의 술(순수 알코올 기준)을 마신다. 술 좀 마신다는 나라의 평균쯤 된다. 하지만 음주 인구만 놓고 보면 얘기가 다르다. 우리나라 음주 인구 비율은 55% 정도인데, 음주 인구당 알코올 소비량은 27.5ℓ나 된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술 안 마시는 사람도 많지만 마시는 사람은 폭음을 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술을 마실 수 있게 된 건 ‘음주 유전자’를 통해 알코올 분해 능력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버클리대 로버트 더들리 교수가 발표한 ‘술 취한 원숭이 가설’에 따르면 음주는 진화의 산물이다. 오늘날 인류가 알코올에 끌리는 이유는 발효된 술 열매를 즐겨 먹던 유인원이 적자생존을 거쳐 우리의 조상이 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본격적인 음주의 시작은 신석기 시대로, 4대 문명 발상지에선 다양한 ‘음주 흔적 유물’이 발견됐다.

▼우리나라는 음주에 대해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주정뱅이, 고주망태, 알코올 중독처럼 과음과 관련한 단어 쓰임은 부정적이다. 그만큼 술은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대상이란 뜻일 테다. 폭음을 일삼으면 독이 되지만 잘 마시면 약이 되는 것 또한 술이다. 적당한 음주는 자신의 삶도 타인과의 관계도 풍요롭게 한다. 올 연말 누군가와 술자리를 갖는다면 기분 좋게 먼저 한잔 건네보자. 올 한 해 수고했다는 덕담도 얹어서. 함께하는 이가 못마땅한 직장상사일지라도 말이다.

강지현(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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