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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백일장 소고(小考)- 유행두(동화작가)

기사입력 : 2019-12-26 20:23:00

예비 문인의 가슴은 가을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신문사에서 실시하는 신춘문예공모전에 지금까지 공들여 쓴 글을 보내기 위함이다. 신문사의 공고가 시작되면 있는 힘을 다해 원고를 정리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우체국으로 향하고, 우체국 직원의 실수로 내 글이 누락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지켜본다.

우편을 보낸 후에는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며 전화기를 품고 산다. 행여 당선통보 전화는 아닐까, 낯선 스팸 번호에도 덜렁 받아버리기 일쑤다. 연말이 다가오고 여기저기 당선 통보가 끝날 시점이면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내년을 기약하면서도 최종심 심사평에 이름이 올라있지는 않은지 밤새 신문사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면서 새해를 맞이한다.

많은 문인들이 겪었을 법한 일이다. 장르별 단 한명밖에 뽑지 않는 수백 대 일의 경쟁에서 당선자보다 낙선자가 당연히 많은 현실이지만, 신춘문예 당선은 문인이 되는데 가장 인정받는 등단 코스이다. 이렇게 등단한 문인들 중에는 어릴 적에 참가했던 백일장에 대한 추억담이 많다.

백일장은 조선시대에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해 태종이 성균관 학생들에게 시무책을 시험한 데서 비롯하였다고 전해진다. 시관의 주재 아래 시제를 내걸어 실시한 후 성적이 뛰어난 사람에게 장원을 주어 잔치를 베풀고 상을 주는 제도였다.

이러한 백일장은 오늘날로 이어져 국가나 여러 단체에서도 다양하게 개최되고 있다. 문단에서 활동하지 않는 신인의 문예 활동을 장려하거나 수상을 계기로 문학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촉진제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백일장은 장래 문학인의 꿈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 지역 곳곳에서도 시기에 따라 백일장을 실시하는 단체가 제법 많다. 한때는 ‘전국백일장’이라는 타이틀이 있는 백일장에는 타 지역 학생들의 참여도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근래 백일장 현장에는 예전에 비해 참가 학생 수가 절대적으로 줄어든 것을 실감한다. 이는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의 교외 활동으로 인한 수상실적이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도록 제도가 바뀐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학교 공부가 최우선이 되어버린데 씁쓸함이 더해진다.

또한 교육기관에서의 적극적인 홍보와 협조가 부족해 보인다. 주최 측이나 단체에서 보내는 학생 참여 협조 공문이 학생이나 학부모에게까지 전달되지 못하고 교육청 공문 게시판에 갇혀만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런 탓에 수많은 학부모나 학생들이 백일장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백일장을 실시하는 주최 측이나 단체에서는 공문 방식만이 아닌 현수막을 걸어 안내하거나 홈페이지, 공모전 사이트에 게시하는 등 다양한 홍보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는 세상이 아직도 펜이 칼보다 강한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수많은 작가와 시인을 탄생시킨 백일장은 분명 미래의 우리 사회에 진정한 펜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제도임을 부정할 수 없다. 백일장 원래의 취지가 퇴색되지 않도록 많은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여러 방법을 강구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그리하여 펜이 진정한 펜 역할을 하는데 백일장이 중요한 씨앗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유행두(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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