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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설날엔 고향을 찾자- 윤한신(전 마창진 합천향우회장)

기사입력 : 2020-01-19 20:38:19

설날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다.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 사상에 기반을 두고 돌아가신 조상과 자손이 함께 하는 뜻깊은 시간이다. 또 도시생활과 산업사회의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새옷을 갈아입는다. 그러면서 배달민족으로서 일체감을 가진다.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보면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 편에는 백제 고이랑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3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시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일치된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오늘날의 설날과 비슷한 풍속이라 할 수 있다.

신라에서도 제36대(765~780) 오묘(五廟) 태종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대보름, 삼진날, 팔관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 단오, 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어릴 때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다. 어린 시절 음력 설날이 다가오면 어머님이 설치레로 새 운동화, 새 양말, 새 옷 등 식구대로 한 보따리 장에 가서 사가지고 와서 방 구들막에 갖다놓는다. 그러면 설 올 때까지 매일 운동화도 신어보고 옷도 입었다 벗었다 장롱 안에 넣었다 내었다 했다. 설날이 온다는 기쁨으로 모든 일이 재미가 있고 신이 난다. 그리고 어른들 말씀이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굼벵이가 된다는 속담이 있어 잠을 설치곤 했다. 그렇게 기쁘고 기대했던 설날이 되면 한가지 힘든 일이 생겨난다. 어머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제일 연세 많은 어른들부터 차례로 떡국을 갖다드리라고 했다. 그러다 보면 하루 시간이 다 가버리곤 했다. 어머님 심부름하고 나면 또 한 차례 아버지께서 웃어른들을 빠짐없이 세배 드리라고 하여 집집마다 세배인사를 했고, 하루 인사를 다 못하면 그 다음날 끝내곤 했다.

이렇게 예의범절로 어른을 섬기고 나면 젊은 청춘 남녀들은 윷놀이, 널뛰기 등으로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어른 섬김 등으로 제대로 놀지 못하고 짜증스럽게 생각했으나 세월을 지나고 보니 너무나 큰 인성교육이 되었다. 어른들을 보면 허리 굽혀 공손히 큰절을 하다 보니 공경심이 몸에 배게 되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만 설날에 외국여행을 가는 것보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이나 마을 어른들한테 세배도 하고 산소 찾으면서 추억을 회상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윤한신(전 마창진 합천향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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