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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꿈드림을 아시나요?- 이진숙(소설가)

기사입력 : 2020-02-06 20:21:00

2월은 졸업 시즌이다. 요즘은 코스모스졸업이니, 졸업유예니 해서 졸업식이라는 의미가 퇴색되는 분위기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 시절에는 무척 큰 행사였다. 내가 다닌 M여고는 졸업식에 한복을 입었다. 당시 한복이 있을 턱이 없던 나는 큰어머니가 시집올 때 입고 온 연분홍 한복을 빌려 입고 졸업식에 갔다. 나의 빛나는 졸업식을 축하하러 온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쓸쓸히 졸업식을 마치고 교문을 나설 때였다. 그 순간 기분이 묘했다. 대학 진학도, 취업도 정해지지 않은 채 학교를 나와서 그랬을까. 나를 둘러싼 울타리가 사라져버렸다는 두려움과 이제부턴 어디로 가야 할지 목적지를 잃어버린 막막함이 머리 끝까지 차올라서 잠시 비틀거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이 지났고, 나는 지금 ‘산청군 꿈드림’에서 일한다. ‘꿈드림’은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학업을 중단한 청소년들이 자신감을 회복하고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 곳이다. 꿈드림이라는 공간을 알기 전까지는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해 전혀 몰랐을 뿐더러 관심조차 없었다. 이곳에 와서야 내 주변에 학교를 나온 청소년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학교를 그만둔 청소년은 28만 명이며 매년 6만 명씩 증가하는 추세란다. 학교를 나온 이유는 다양했다. 학교라는 제도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친구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거나, 자기만의 꿈을 찾기 위해서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경우 등등 개개인마다 사연이 특별했다.

학교 밖으로 나왔다고 해서 학업을 포기한 건 아니다. 아이들은 검정고시를 통해 학업을 인정받아 원하는 대학에 가거나 저마다의 꿈을 찾아 걸어간다. 자격증을 취득해서 일찌감치 자립하는 청소년도 있다. 문제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이다. 학교 밖 아이들을 향한 선입견, 편견, 무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심지어 꿈드림 사업을 운영하는 직원들조차 그런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걸 종종 본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높게 둘러쳐놓고 학교 안과 학교 밖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부터가 편견이며 차별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선택일 뿐, 하나의 인격체를 옳고 그름으로 나누는 잣대가 아닌데도 말이다.

지난 연말엔 산청꿈드림에서 종업식을 치렀다. 수년간 꿈드림을 통해 꿈을 키운 청소년들이 더 큰 꿈을 향해 세상으로 나가는 작은 의식이었다. 한 친구는 굴삭기운전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해서 일찌감치 사회인으로 우뚝 서고, 검정고시 합격으로 원하는 대학과 상급학교에 진학한 친구들도 있으며, 새로이 목표를 정해 각오를 다지는 이들도 있다. 아이들은 저마다 익힌 실력을 뽐내며 모듬북 공연과 바이올린 협주로 종업식 분위기를 띄웠고 제 손으로 만든 책과 도자기, 사진작품을 전시하였다. 무엇보다 가족과 지인과 멘토 선생님들이 함께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는 따뜻한 시간이었다. 지난 시절 내가 한 손에 졸업장을, 또 한 손엔 한복 치맛자락을 쥐고서 학교를 나서던 그때와는 사뭇 다른 세상이다. 다양한 형태의 삶이 인정받고 있으며, 행복은 주관적이라는 인식 또한 빠르게 스며들고 있으니 말이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세상이 곧 학교다. 학교를 나온 이유가 다양하듯 학교 밖을 나와 삶을 이어가는 모습 또한 다양하다. 일찍 학교를 나온 아이들은 가슴에 저들만의 목표를 세우고 꿈을 키워간다. 하나 하나 들여다보면 어여쁘고 사랑스럽다. 오늘도 나는 그들이 품은 꿈을 힘껏 응원한다.

이진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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