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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윤종민 보물섬민속연보존회장

하늘 높이 훨~훨 근심 걱정 훌~훌

30여년 전 부산 연날리기 구경갔다 반해

기사입력 : 2020-02-13 20:47:07

“남해군 주변 해역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격전을 치른 역사의 현장이 많습니다. 충무공은 통신수단이 변변치 않던 임란 때 거북선을 이용해 적을 물리치는 데 있어 통신수단으로 신호연을 날렸다는 기록이 있어요. 그런 역사가 있는 내 고향 남해에서 연을 만들고, 날리고, 알리는 일이 보람입니다.”

윤종민(66) 보물섬민속연보존회장은 연(鳶) 얘기를 하는 동안 매우 편안해 보인다. 머리는 하얗게 세월의 흔적이 남았지만 연을 떠올리면 고향 언덕에서 연을 날리는 50여년 전의 동심으로 돌아간 듯하다. 그만큼 연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그는 남해읍 내에서 조금 떨어진 야촌마을에 사부랑공작소라는 연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 마을의 옛 지명을 딴 공작소를 열어 놓고 아내와 농사를 지으면서 전통연 만들기와 기술 전수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직장생활을 하는 틈틈이 연에 심취해 활동하다가 회귀본능으로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연 보급에 노력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윤종민씨가 남해군 남해읍 야촌마을에 있는 자택에 마련한 연 공방 ‘사부랑공작소’에서 방패연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윤종민씨가 남해군 남해읍 야촌마을에 있는 자택에 마련한 연 공방 ‘사부랑공작소’에서 방패연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잠시 잊었던 연의 기억, 다시 깨어나다= 그는 남해군 남면 우형마을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닌 후 부산으로 이주했다. 연을 잘 만들었던 선친 덕분에 연과 늘 가까이하며 살았다. 연을 많이 접하고 만들기와 날리기를 원없이 실컷 즐길 수 있었다. (주)한진이라는 직장에서 바쁘게 생활하면서 연에 대한 추억은 한동안 잊고 지냈다.

“제 나이 30대 중반 정도였으니 벌써 30여년이 지난 일이네요. 부산 해운대에서 국제연날리기대회가 열려서 구경을 갔어요. 그때 외국과 전국에서 온 연사들이 모여 다양한 연을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연에 대한 기억과 향수가 되살아났어요.”

대회 직후 해운대민속연보존회에 가입해 연을 다루는 본격적인 취미 생활에 들어갔다. 당시 해운대에는 높은 건물이 거의 없어 연날리기가 좋았다. 연날리기에 빠져들면서 연을 만드는 기술도 함께 쌓아 나갔다. 어릴 적 만들던 연과 대회에 출전하는 연은 차원이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부산에는 지역별로 민속연 보존회가 여럿 있었다. 연 만드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연 제작기술 무형문화재 배무삼씨를 만나기 위해 그가 살고 있는 동래를 부지런히 다녔다. 연에 대한 공부라면 다른 보존회와도 교류를 활발히 했다. 연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면서 우리나라 방패연이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연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현재 방패연을 주로 제작하는 그가 방패연에 빠져들게 된 이유이다.

연 만드는 기술과 연날리는 실력이 향상되면서 연날리기 전국대회나 세계대회에 참가하거나 연 전시회, 제작 체험강연을 진행하는 등 활동 보폭을 넓혀 나갔다. 2005년께 부산 아쿠아리움에서 화가 정창원씨와 연을 주제로 공동전시회를 개최해 전통연 연구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울산 현대중공업에서는 외국인 감독관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연 제작 강의를 정기적으로 가져 우리 전통연의 우수성을 홍보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2004년을 포함해 세 차례나 근로복지공단 주최 근로자문화예술제 공예분야에 이순신 장군 전술신호연을 출품해 입상하는 등 연 제작 감각을 인정받기도 했다.

윤종민씨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외국인 근로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연 만들기를 하면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윤종민씨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외국인 근로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연 만들기를 하면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연을 처음 날렸던 그 고향으로 돌아오다= 10년 전쯤 퇴직한 후 부산에서 지내던 그는 지난 2017년 9월 남해로 돌아왔다. 한적하면서도 남해읍내와 멀지 않은 마을에 집을 짓고 연을 보급하기 위한 공방도 집 한쪽에 마련했다. 30여년 동안 무수히 연을 만들고 날린 그에게 연이 전해주는 매력은 무엇일까.

“연은 만드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집중력이 요구되는 정교한 수작업이다 보니 정신건강에 좋고 취미생활로 이만한 것이 없어요. 자신이 직접 만들어서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연을 볼 때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연이 대회에 나가서 상대방을 이겼을 때 기분은 다른 어떤 일과 비교하기 어렵지요.”

고향 남해는 연을 만들기에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 연의 뼈대가 되는 나무는 대나무를 깎아 살을 만든다. 대나무살을 만들 때 옛날에는 신우대를 많이 썼지만 요즘은 왕대를 많이 쓴다고 한다. 대나무가 많은 남해에서는 둘 다 구하기 쉬운 재료들이다. 연이 잘 날기 위해서는 한쪽으로 쏠리거나 돌지 않도록 균형 잡는 게 중요하다. 이런 정밀함을 유지하기 위해 연을 제작하는 연장들 가운데 중요한 것은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고향이 좋아 귀향한 그에게 이제는 본업이 되다시피한 연으로 인해 고향 생활이 더 바빠졌다. 귀향한 그해 오자마자 남해유배문학관에서 주최 측의 요청으로 ‘윤종민 작가 민속연 전시회’라는 고향에서의 첫 전시회를 가졌다. 가장 최근 전시회는 지난 1월 남해도서관 갤러리에서 30점가량의 작품으로 이충무공 전술신호연 전시회를 가지면서 새해를 맞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새해 소원을 들어주는 연만들기’ 행사도 진행했다. 2년 남짓한 귀향생활 동안 전시회만 4~5차례 가졌다.

윤종민씨가 지난해 5월 남해군 미조면에서 열린 멸치축제장에 부스를 마련해 충무공 전술신호연 전시·체험행사를 갖고 있다.
윤종민씨가 지난해 5월 남해군 미조면에서 열린 멸치축제장에 부스를 마련해 충무공 전술신호연 전시·체험행사를 갖고 있다.

지난해에는 남해문화원이 개설한 문화학교와 교육청이 주관하는 생활터전학교에서 연만들기 강좌를 진행해 남해의 연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했다. 울산에서 연 강의를 많이 해온 탓에 울산대공원의 체험학습 공간인 공작소에서 주 1회씩 강의하기도 했다. 보물섬 마늘&한우축제 등 남해의 대표 축제장에도 부스를 마련해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연 만들기와 날리기 체험도 수차례 가졌다. 연을 알리기 위한 요청이 있으면 전시회든 강의든 축제장이든 달려간다.

◇전통연 연구와 기술 전수하며 여생= 그는 보물섬 마늘축제 때 꼬리연 120개를 3m 간격으로 연결한 창작연을 400m 정도 날리는 장관을 연출한 바 있다. 이 정도의 창작연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전국에 몇명 되지 않는다.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 탓에 그 역시 여러 차례 실패하는 등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성공했다. 이런 기술과 지식을 전수해주고 싶지만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게 고민이다.

윤종민 씨가 자신의 연 공방 옆 들에서 3m 가격으로 120개를 연결해 길이 400m에 이르는 창작연을 날리고 있다.
윤종민 씨가 자신의 연 공방 옆 들에서 3m 가격으로 120개를 연결해 길이 400m에 이르는 창작연을 날리고 있다.

그는 귀향 후 전통연 제작과 보급을 위해 ‘보물섬민속연보존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현재까지 이 단체에 회원이 그리 많지 않은데 올해는 남해 사람들이 연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져 회원수가 늘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연과 관련해 남해에서 꼭 가져보고 싶은 행사가 있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연사들을 다 모아서 연날리기전국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지역답게 이순신순국공원에서 대회를 가진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남해는 이순신 장군께서 신호연을 이용해 왜적을 물리쳤던 뜻깊은 고장이지만 이러한 역사성이 있는 연을 보존하기 위한 활동은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다른 지자체에서 연 박물관을 만들어 전통을 이어가는 것을 참고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남해에서 연날리기대회를 개최한다면 이순신 장군의 순국지에 대한 의미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종민씨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통신수단으로 사용하던 전술신호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종민씨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통신수단으로 사용하던 전술신호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종민씨는 취미 생활로 시작한 연이 30여년 동안 이어지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장인의 반열에 올라선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관광산업이 미래라고 여기는 남해군이 연과 관련된 그의 콘텐츠를 관광 중흥에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글·사진= 김재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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