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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노건평 명예훼손 소송 2심서 패소 왜?

국민 알 권리·의혹 해소 위한 수사결과 발표 필요성 인정

재판부, 원고 일부 승소 원심 뒤집어

기사입력 : 2020-02-16 21:00:08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1심에서는 검찰의 위법성이 인정돼 노씨가 승소한 바 있다.

국민의 알권리를 목적으로 한 검찰 수사결과 발표의 위법성에 대한 1심과 2심 법원의 판결이 엇갈리면서, 최근 화두가 된 피의사실 공표 문제와 맞물려 관심이 쏠린다.

본지가 입수한 판결문을 통해 재판의 쟁점을 정리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친형 노건평 씨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친형 노건평 씨./경남신문 DB/

◇1심 판결 뒤집은 2심 내용은= 창원지법 민사1부(박평균 부장판사)는 노씨가 검찰 수사결과 발표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1억원 청구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일부 승소한 원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1심 재판부는 명예훼손 주장을 일부 인정해 정부가 노씨에게 5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노씨는 검찰이 지난 2015년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관련 특별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성씨가 자신에게 특별사면 청탁을 했다고 밝힌 보도자료에 대해 “검찰의 허위사실로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었다.

당시 검찰은 노씨와 관련해 ‘A○○의 변호사법위반 사건 수사결과’를 제목으로 공소시효 도과(경과) 등의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후 노씨는 “특별수사팀이 신빙성 없는 진술이나 추측성 진술에 근거해 성 전 회장의 특별사면에 관한 수사결과를 발표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주위적으로 피의사실 공표, 예비적으로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 측은 “이 사건 수사결과 발표는 일반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에 관해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객관적이고 충분한 증거나 자료를 바탕으로 한 사실에 관해 이뤄졌다”며 “발표 내용에 있어서도 익명 처리를 하는 등 피의사실의 공표로 인해 생기는 피침해이익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위법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국민의 알 권리 vs 피의자의 명예·인격권= 수사기관이 수사결과 발표 등을 통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행위는 그 결과 피의자에 대한 명예·인격권 침해와 국민의 알 권리 충족 문제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이번 사건의 경우 1심 재판부는 충분히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피의자의 명예·인격권이 보호돼야 한다고 판단했고, 2심 재판부는 개인적 명예와 인격권이 다소 후퇴하더라도 중대한 사건의 경우 의혹을 해소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사결과 발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수사결과 발표로 인해 전 대통령의 친형으로서 공인인 원고가 명예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 사건은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정책적 판단에 따른 조치인 특별사면에 대한 청탁 의혹이라는 중대한 공적 사항에 관해 제기된 일반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하고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객관성 및 정확성을 갖춘 내용을 적법한 공표의 절차와 형식에 따라 공표한 것으로 위법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의사실 공표는 국민의 알권리 실현을 통해 사회에서 발생되는 범죄행태를 조명하고, 사회적 규범의 내용 및 그 위반에 따른 법적 제재 여부 등을 밝히며, 그에 대한 사회적 대책을 강구하도록 하는 등 여론 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을 한다”며 “특히 중대한 권력형 비리 사건의 경우 주권자인 국민이 사건의 경위, 처분의 근거, 처분 결과에 관해 안다는 것은 단순히 그 정보를 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에 기초해 올바른 정치적·사회적 의사를 형성하고, 형성된 의사를 표현하며, 나아가 여론 형성을 통해 국정 운영 및 정치·경제·사회적 권력을 감시·견제하고, 국정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1심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공소시효 도과를 이유로 공소권 없음 결정을 하면서 명확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지도 않는 사실을 발표하는 경우, 더구나 피의자가 검찰 조사에서 적극적으로 부인하였음에도 이를 명시하지 않은 채 발표하는 경우 피의자는 그 불이익을 그대로 감수할 수밖에 없어 결국 피의자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된다”고 판단했다. 피의자가 불기소 처분이 됐을 경우 항고나 재항고 등 형사소송절차상 명예를 훼복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수사결과 발표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노씨가 전 대통령의 친인척으로서 특별사면과 관련하여 어떠한 로비를 하였는지 여부는 일반 국민들의 정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항으로 수사결과의 발표에 대하여 필요성과 정당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그러나 수사과정에서 공소시효 도과가 확인됐을 경우, 나아가 피의사실 인정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국민들로 하여금 원고가 피의사실을 범하였다고 오해할 수 있는 표현이나 단정적인 표현은 피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고운 기자 lucky@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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