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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무명과 유명 사이- 허철호(사회2부장·부국장대우)

기사입력 : 2020-02-18 20:26:06

‘쿵짝쿵짝 쿵짜자 쿵짝 네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한 구절 한 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웃는 인생사 연극같은 세상사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 쿵짝~. 가수 송대관의 히트곡 ‘네박자’ 가사 중 일부다. 들을 때마다 가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트로트 경연대회가 붐이다. 한동안 방송에서 듣기가 어려웠던 오래된 트로트 노래들이 무명가수들의 목소리로 색다른 느낌의 노래가 되어 들린다.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경연대회는 몇몇 유명가수들을 탄생시켰다.

히트곡이 없이 유명가수가 되는 건 예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히트곡이 없는 유명가수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송가인일 것이다. 그녀는 지난해 TV조선의 ‘미스트롯’에서 우승한 후 방송 출연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사비를 받고 무대에 서는가 하면, 방송 예능 프로그램 등에도 연이어 출연하고 있다. 전남 진도에 있는 그녀의 고향 집은 수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관광지가 됐다. 송가인과 우승을 놓고 경쟁을 벌였던 홍자와 정미애 등도 무명시절과는 크게 달라진 대우를 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요즘엔 TV조선 ‘미스터트롯’에서도 경연 과정에 스타들이 탄생하고 있다. 트로트가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인기를 얻지 못한 참가자들은 물론, 성악과 판소리, 록음악 등 타 장르의 참가자들, 그리고 하동의 정동원군과 마산의 남승민군 등 청소년 참가자들까지 노래 실력은 유명 트로트 가수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경연 무대에 오른 모든 참가자들이 우승후보였다.

지난해 미스트롯에 출연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던 참가자들의 무명 시절 영상들을 본 적이 있다. 길거리에서 혼자 버스킹을 하는 영상과 지역축제, 체육대회, 동창회 무대에서 노래하는 영상들이 많이 있었다. 제법 유명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들도 있었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무대에서 그들은 열심히 공연을 하고 있었다. 한 참가자는 행사장에서 수차례나 이어지는 관객들의 앙코르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불러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무명 시절 영상 속의 참가자와 경연무대를 통해 유명해진 참가자의 노래 실력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뛰어난 노래 실력을 갖고도 그들은 왜 인기가수가 되지 못했을까. 큰 무대를 통해 그들의 실력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외엔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무명가수와 유명가수의 사이에는 인기가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인기는 곧 그들의 수입과도 연결된다. 무명가수는 인기가수에 비해 무대인 공연 등 행사가 턱없이 적고, 행사출연료도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무명가수들은 본업인 공연으로는 생활비를 제대로 벌지 못해 부업으로 액세서리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경연을 통해 무명가수에서 유명가수가 된 이들이 이젠 다른 유명가수의 히트곡이 아닌 자신의 노래로 인기를 계속 이어가기를 바란다. 경연에 참가한 무명가수들처럼 세상에는 분야별로 뛰어난 실력을 갖고도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이들이 자신의 실력을 선보일 수 있는 무대들이 많이 생겼으면 한다. 오늘도 이름 없는 작은 무대에서 소중한 꿈을 키우고 있을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허철호(사회2부장·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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