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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기억의 조각- 장수용(경남사회복지관협회장)

기사입력 : 2020-02-25 20:27:34

창가에 머무는 바람 소리가 점차 약해지는 것을 보며, 생명이 움트는 계절이 다가옴을 느낀다. 흙 속에서 올라오는 새싹, 일찍 핀 들꽃,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문득 봄 한철 올라오는 푸른 쑥을 떠올리니 시간이 나를 과거로 데려간다.

지금이야 어려운 이웃을 정부보조금이나 여러 실질적 재정 보조로 생계비를 지원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러하지 못했다. 불우한 환경에 처한 가정에 직접 자주 방문하여 현물로 필요한 것을 지원해 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오래전 일이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사춘기 딸 하나 두고 살아가는 여성 경자씨(가명)가 있었다.

현물을 제공하던 시절이니 흰 쌀, 보리쌀 짊어지고 찾아가고, 뭐라도 하나 생기면 방문해서 가져다주는 일이 노상 있는 일이었다. 어느 날 하루는 세탁기가 고장 나서 어쩔 줄 몰라 해, 수리해 주러 간 기억도 난다. 처한 현실에 학교도 가기 싫다며 방황하는 청소년 딸을 온 동네 돌아다니며 찾아내어, 앞으로 살아갈 날을 위해서 미용 기술을 익히게끔 한 적도 있다.

2년여 시간을 방문하며, 또 다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없나 살펴보는 것이, 복지사인 나의 일이었다.

봄이다 싶은 그 계절, 경자씨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복지관 사무실에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걱정이 앞섰는데 웬걸, 경자씨가 어색해하며 무언가를 내밀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바로 쑥떡이었다. 그 없는 살림에 마련한 경자씨의 쑥떡은 어쩌면 경자씨의 삶처럼 거칠지만, 쑥 깊숙한 봄을 향미해 주는 맛이었다. 아직도 수줍어하며 놓고 간 쑥떡이, 그 부끄러워하던 손이 눈에 선하다.

중간에 직장을 옮기게 된 나는 그 지역을 떠났다. 1여년이 지난 뒤에 일했던 그 복지관에 잠시 볼 일이 있어 들르게 되었다.

그런데 경자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그 충격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삶의 무게는 무거운 법이다. 제3자인 내가 뭐라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새 울컥 밀려오는 감정들로 눈가에 맺힌 눈물은 기억의 조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장수용(경남사회복지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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