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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795) 제25화 부흥시대 105

“자네와 내가?”

기사입력 : 2020-03-19 08:03:58

류관영이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온 것은 용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구보다야 북쪽이지 않는가?”

“그렇지요. 사업은 잘 되시죠?”

“그런 셈이지. 자네는 좀 어떤가?”

류관영은 대구의 삼일상회를 운영하면서 미곡에도 관여하고 있었다.

“전쟁 중이라 그만저만하지요. 그런데 금년에도 쌀값이 많이 오를 것 같습니다.”

“항상 쌀값이 문제지.”

“그래서 쌀을 좀 사려고 합니다.”

류관영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쌀을?”

“예. 아는 사람 중에 대구에 미곡상이 있는데 쌀을 7천 석이나 사 모았답니다. 군산에 있는 미곡상이 사달라고 했는데 군산의 미곡상이 갑자기 죽었다고 합니다. 쌀 때문에 공주에 갔다가 공비들에게 죽은 모양입니다.”

군산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미곡상들이 많았다. 미곡상이 공비에게 죽다니. 경찰이 공비를 토벌하고 있었으나 때때로 산에서 내려와 지서나 부자들을 습격하는 일이 있었다. 치안이 불안한 상태였다.

“허어.”

이재영이 탄식했다. 공장을 인수하는 문제로 이재영도 자주 지방을 오갔다. 도로 사정도 좋지 않고 산길을 지나는 일도 있어서 항상 공비들 때문에 불안했었다. 미곡상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이 사람은 고리채까지 얻어서 쌀을 사 모았는데 쌀을 팔지 못해 낭패를 보게 되었습니다. 쌀을 7천석이나 모았으니까요. 쌀을 모으기 위해 고리채까지 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형님과 내가 샀으면 합니다.”

7천석이면 엄청난 양이다. 경상도 쌀값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쌀이 군산으로 간다면 경상도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자네와 내가?”

7천석의 쌀을 사자는 류관영의 제안이 놀라웠다. 류관영은 비교적 소심한 인물이다. 이런 큰 거래를 하려고 하다니. 무엇인가 흑막이 있는 것 같았다.

“저야 돈이 없으니 조금만 사고 형님이 사야죠. 춘궁기가 되면 쌀값이 오르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형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얼마나 시간이 있나?”

“열흘 안으로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

“알았네. 피곤할 텐데 요정에 가서 쉬도록 하게.”

이재영은 일단 류관영을 미월의 요정으로 보내고 부회장 이철규와 사장들을 불렀다. 사장들은 두 시간이 걸려서야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아버지.”

이정식은 수원에서 오는 바람에 더욱 늦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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