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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여성의 역사 -인류를 지탱해온 ‘위대한 절반’의 사라진 흔적을 찾아서

여성 권리 신장시킨 열혈 여성들

기사입력 : 2020-03-20 08:04:28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다른 여성들은 어디 있었을까? 무수히 많은 여성이 가난하게 살다가 비참하게 죽었다.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 외에 달리 적절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중략)’- 책 속에서.

영국에서 여성학자로 활약하는 저자는 책을 통해 세계사 속에서 가장 학대받고 지워진 존재가 여성이었다는 걸 새삼 일깨운다. 〈인류를 지탱해온 ‘위대한 절반’의 사라진 흔적을 찾아서〉란 부제가 달린 책으로 개정판이 우리말로 번역됐다.

저자는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라는 다소 엉뚱한 질문으로 이야기의 막을 연다. 만일 남자 요리사가 차렸다면 열광하는 추종자를 잔뜩 거느린 성인이 되어 그를 기념하는 축일이 생겼을 것이라고. 또 중고등학교 세계사 책에 등장하는남성은 위인이나 영웅은 몇 백 명은 되도 여성의 이름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7세,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와 빅토리아 여왕, 나이팅게일, 프랑스의 잔 다르크 등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 책은 이 같은 물음에서 시작해 최초의 여성은 위대한 여신이었고 남성들의 수렵이 아니라 여성들의 채집이 고대 인류가 생계를 꾸려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남근’의 역할을 깨달은 남성들은 차츰 여신과 여왕을 죽이고 왕의 자리를 차지하는 등 모든 것이 남성 중심으로 변하게 되고 여성은 하찮은 존재로 전락한다.

여성들은 세계 곳곳에서 자녀를 돌보고, 우유를 짜고, 밭을 갈고, 빨래·요리·청소·바느질하고, 죽어가는 사람 곁을 지키는 등의 역할을 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지만, 결코 평가받지 못하는 노동은 모두 여성들의 몫이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여성들은 시대의 부름에도 앞장섰다. 미국 독립전쟁의 포탄이 머리 위를 날아다니던 전장,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대포를 직접 쏜 여성들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에 앞장선 이들도 거리에서 꽃 파는 소녀와 시장통의 아낙들, 매춘부들 등 다양한 계급의 ‘여성’들이었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엔 농업경제 하에서 생산권과 분배권, 생산물의 처분에 대한 재량권을 잃고 값싼 임금 노동자로 전락한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식민지 개척에 여성들이 필요해 하녀, ‘아내’라는 이름으로 식민지로 보내졌다.

저자는 그러면서도 여성들은 권리를 위한 싸움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교육을 통해 깨달은 수많은 여성들이 여성에게도 ‘인간의 권리’를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해 마침내 투표권을 쥔 다음 아이 낳는 기계로만 취급되는 존재에 대한 각성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문명의 발달로 현대의 여성들은 ‘행복한 가정주부’의 환상을 깨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연대하고 전진한다.

저자는 “이 책은 세계사적으로 수천 년에 걸쳐 진행된 여성의 지난한 삶의 변천사를 불과 100여 년 만에 압축적으로 겪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란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밝힌다.

로잘린드 마일스 지음, 신성림 옮김, 파피에. 2만2000원

이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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