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본지 신춘문예 출신 작가, 코로나 극복 시·시조 응원 ② 이서린 시인

겨울 소나무 - 무담 선생께

기사입력 : 2020-03-30 08:13:46

머리를 감고 싶소. 화르르 머릿속의 먼지 모두 떨치고, 검은 갈기 휘날리며 달려오는 북풍에 묵은 비듬 깨끗이 씻어 머리를 헹구고 싶소. 자고 나면 덧없이 황량해지는 기후, 전신을 휘감아오는 안개의 기습, 소란스런 날새떼 쯤 끄떡하지 않겠소. 건조한 살갗과 마른 입술로 때로는 휘파람도 불어가면서 언 땅 깊이 시린 발가락 뻗어 가겠소. 강물 소리 멀어져 아득하다 해도 살이 얼어 갈라지는 밤이 온대도 발아래 안온함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오. 눈송이 흩날리는 축복의 날엔 그리운 마음으로 팔 벌려 웃겠소. 바람이 매서울수록 혈관은 푸르고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올 것이오. 소리치지 않겠소. 여기, 이 자리 나는 서 있겠소.

☞ 시인의 말

바이러스처럼 봄이 번지고 있습니다. 꽃은 천지사방에 소문처럼 퍼지고 있고요. 그러나 쿨럭거리는 세상. 불안한 봄을 그대는 어 찌 지내고 있나요. 이 봄, 4월에 웬 겨울 소나무인가 할 테지요. 바깥은 봄인데 우 리 마음과 상황은 아직 겨울을 지나는 중입니다. 거센 눈보라와 찬 서리, 살을 에이는 칼바람에도 끄떡없는 겨울 소나무처럼 모 쪼록 이 계절을 잘 건너시길. 그리하여 묵은 비듬 털며 두 팔 벌려 웃는 그대와, 마주할 수 있기를 손모둠 합니다. (199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