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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825) 제25화 부흥시대 135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기사입력 : 2020-05-01 07:59:30

이재영이 보아도 수리를 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자재만 준비되면 두 달이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일보다 이 일을 먼저 해주십시오.”

“예.”

중앙청을 돌아본 뒤에 경무대로 들어갔다. 경무대도 크게 파손된 곳은 없었다. 이재영은 경무대를 보자 가슴이 뛰었다. 평소라면 절대로 출입할 수 없는 대통령 관저다.

“전 여기서 자재목록을 뽑고 수리할 곳을 점검해 보겠습니다.”

경무대를 둘러본 뒤에 고정엽이 말했다.

“최선을 다해서 수리하도록 하게.”

이재영은 고정엽을 남겨두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고정엽은 이튿날부터 인부들을 모아 중앙청과 경무대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호텔 개축은 잠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휴전회담은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신문이 연일 휴전회담 타결이 임박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홍콩을 다녀온 박민수가 나츠코 아들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6월이 가까워지고 있을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불행한 소식을 알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실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선생님께는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간략하게 소식을 전합니다. 어머니는 지난 4월17일 오사카의 병원에서 돌아가셨고, 화장을 하여 오사카성 옆의 대림사라는 사찰에 유골을 모셨습니다. 바다 건너 조선이 보이는 곳에 안치해 달라고 어머니께서 유언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상으로 짧은 소식을 전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나츠코 아들의 편지를 받은 이재영은 가슴이 아팠다.

나츠코는 일본 유학시절에 알게 되었던 여자였다. 그 후 한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그녀는 광기의 군국주의로 흘러가는 시대에 군인인 남편과 결혼하여 행복한 인생을 살지 못했다. 이재영을 다시 만난 것은 일본이 망하기 직전이었다. 일본이 망한 뒤에는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이재영의 여자로 살았다.

마지막으로 홍콩에서 만나려고 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데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이재영은 나츠코의 명복을 빌고, 아들에게 위로를 보낸다는 편지를 박민수를 통해 보냈다. 나츠코의 아들과 사업적으로 협력할 일이 있으면 하라고 그에게 지시했다.

‘일본을 갈 수 없으니….’

나츠코의 유골이 있는 절에도 갈 수 없었다.

나츠코와 보낸 날들이 이재영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글:이수광그림:김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