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작가칼럼] 초유의 온라인 개학, 그리고 그리운 선생님- 박재범(시인)

기사입력 : 2020-05-07 20:18:38
박재범 시인

고등학교 2학년 때 평소에 존경했던 한 선생님께서는 수업 틈틈이 특별한 활동과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지셨다. 그래서 불만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분은 그런 시간에 더 열정적이셨다. 그분의 특별한 수업활동 중 하나가 묘비명 쓰기였다.

그런데 젊디젊은 나이에 묘비명을 쓰려고 고민을 하다 보니 아, 이건 죽음에 관한 문제가 아니었다. 삶과 관련된 문제였다. 단 한 줄이라도 묘비명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을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대다수 고등학생들이 일찍부터 입시에 내몰려 정작 자신을 돌아보고 어떻게 나다운 삶을 살 것인지를 제대로 한 번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지금도 살다가 한 번씩 멈추어 서서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을, 그리고 그 길을 품고 있는 세상을 맑은 눈으로 둘러보고 마주 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하며 살 수 있는 건 그 선생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지난 4월 전국 초·중등학교에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이 이루어졌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대응이었다. 전 국민이 여러 가지 기술적 오류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오는 실생활의 어려움들을 감내하면서도 사태의 극복을 위해 기꺼이 동참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상황이 진정되고 있어 이제 다음 주부터 조심스럽게 학생들의 단계별 등교 수업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온라인 개학을 시행하면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육 혁신과 미래 교육을 앞당기는 좋은 기회이자 마중물이 될 것”이라며 동참을 당부했고, 이후 교육계와 사회 일각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비대면 온라인 교육체계의 구축과 미래 교육을 연결하는 논의들이 제기되고 있다.

요즈음 청소년들은 모바일 네트워크, 스마트 패드와 와이파이에 더 친숙한 시대에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상 초유의 온라인 개학 사태가 이러한 시대 변화에 걸맞은 교육 방식을 모색하고, 그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변곡점을 만들어주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시대가 급변하고 교육의 방식이 첨단화될수록 진정한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 학교 교육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의 초·중등 교육은 지식과 정보의 습득만이 아니라 공감 능력, 공동체 의식을 키울 수 있어야 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 교육 혁신과 미래 교육의 저변에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 최첨단 기술의 완벽한 원격교육망보다 먼저 사람다운 사람, 맑고 건강한 영혼을 위한 인성교육망이 촘촘하게 깔릴 수 있기를 바란다.

스승의 날이 있는 5월. 이제는 다시 뵐 수 없는 먼 곳에 계시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더욱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

박재범(시인)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