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주류 경제학’ 통념을 뒤집다

기사입력 : 2020-05-08 07:56:46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줄 알고 시장은 늘 효율적이라는 기본 전제에서부터 세금 인상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며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은 국내 일자리를 줄인다는 논리는 경제학을 배운 많은 사람에게는 상식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 책은 실증적 증거를 들어 이런 주장에 반박하면서 주류 경제학의 ‘그릇된 가르침’의 배경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고 부부이기도 한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트테르 뒤플로가 함께 썼다. 저자들은 극빈곤 문제의 해결 방안을 주로 연구해 왔는데, 이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목격한 문제들은 부유한 국가가 직면한 문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경제 성장, 불평등, 인공지능과 일자리, 기본소득, 정부에 대한 신뢰, 정치적·사회적 분열,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 등은 부유하건 가난하건 모든 국가가 공통으로 맞닥뜨린 과제 또는 도전이다.

외국인 노동자들 때문에 자국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아우성은 미국뿐만 아니라 방글라데시 로힝야족 사례에서 보듯 일부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민자들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는 정치가들의 주장은 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숫자를 통해 명백히 드러내 보인다. 나아가 오늘날 세계가 처한 문제는 이주와 이민이 너무 적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도 떠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재난 상황이 아닌 한 고향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중국산 제품의 대량 수입으로 일자리를 잃은 미국의 노동자들 역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러지 않는다.

이민자가 많이 유입되면 도착국 노동자에게는 해가 될까. 저자들은 ‘마리엘 보트리프트(Mariel Boatlift)’ 연구 결과를 들어 반박한다. 1980년 4월 쿠바 통치자 피델 카스트로가 원하는 사람은 쿠바를 떠나도 좋다고 연설한 뒤 그해 9월까지 쿠바인 12만5000여명이 쿠바의 마리엘항을 떠나 미국 마이애미에 도착했다. 이들이 들어오기 전과 후 마이애미 거주자의 임금과 고용률 변화를 애틀랜타, 휴스턴, 로스앤젤레스, 탬파 등 마이애미와 비슷한 미국 도시 4곳과 비교한 결과 의미 있는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저자들은 이 밖에도 많은 실증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이민자가 상당히 많이 유입돼도 현지인의 고용과 임금에 부정적인 영향은 거의 미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다.

저자들은 세금에 관한 통념에도 이의를 제기한다. 세율을 낮추면 일할 유인이 커져 세수가 늘어난다는 이른바 ‘래퍼 곡선’이나 세금 인하로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법안 모두 잘못됐다는 것이다.

일류 운동선수들은 연봉 상한이 있다고 해서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세율이 올라가면 세금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늘어날지언정 그렇다고 해서 부자들이 일을 덜 한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도 복지 혜택을 많이 받게 됐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거나 덜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경제적 인센티브만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도 원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오늘날 국가 정책의 많은 부분이 경제학에 토대를 두고 있지만 그것이 ‘나쁜 경제학’이라면 온갖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나쁜 경제학’은 부자들에게 막대한 혜택을 주고, 복지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국가는 무능하고 부패한 존재라는 개념과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개념이 퍼지게 하는 토대가 됐고, 그 결과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불평등을, 그리고 맹렬한 분노와 무기력한 패배감이 뒤섞인 상태를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아비지트 배너지·에스트테르 뒤플로 공저, 김승진 역, 생각의힘, 648쪽. 2만7000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