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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인칼럼] 지역경제와 함께한 창원상공회의소 - 한철수 (창원상공회의소 회장)

기사입력 : 2020-05-24 21:21:50

푸르른 오월, 창원상공회의소가 창립 120년을 맞았다. 1899년 마산항이 개항되자 몰려들어오는 식민자본의 위협으로부터 민족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1900년 5월 마산포 객주를 중심으로 결성한 ‘마산상호회’가 오늘날 창원상공회의소의 모태다.

마산상호회는 1902년 일본인들의 야욕으로 빚어진 구강장(舊江場)의 탈취에 대응하여 마산포 주민들의 생활권을 지켜 주었고, 1906년에는 일본인의 구마산포 매립사업 추진에 크게 반발해 회원 일동이 합심하여 거액을 마련한 후 항민공동매축청원서(港民共動埋築請願書)를 요로에 제출하는 등 지역민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마산상호회는 1908년 마산포주민의 자위적 대변기관인 마산민의소 탄생의 산파역이 되었고 그해 6월 30일 조선인상업회의소로 개편하여 근대적 상업회의소로 출발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가중되는 일제의 방해와 압박에 견디지 못해 1914년 비분 속에 해산 되었고, 일제강점기 시기는 일본인의 주도권 아래 상공회의소의 설립과 해산이 반복되었다. 마침내 1945년 조국광복을 맞이한 마산과 진해의 상공인들은 나라를 다시 찾은 기쁨 속에 상공회의소를 새로이 조직하고 일본인들이 철수하고 난 뒤의 지역상공업계 정비에 힘을 기울였다. 그 후 상공회의소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1954년 마산과 진해 상공회의소가 각각 제1대 의원선거를 실시해 법정단체 상공회의소를 출범시켰다.

한편 1973년 산업기지개발촉진법이 공표된 이듬해 창원지역이 산업기지 개발지역으로 확정고시되면서 전형적인 농촌 창원에 한국 최대의 기계공업단지가 들어서자 마침내 1980년 4월 창립총회를 거쳐 창원상공회의소가 문을 연다.

지역 유일의 종합경제단체로서 각 지역의 경제를 선도해오던 마산·진해·창원상공회의소는 2010년 행정구역 통합에 맞춰 2011년 11월 1일 창립총회를 열어 양보와 타협을 바탕으로 통합 창원상공회의소를 출범시키고 11월 11일 설립인가를 받아 오늘에 이른다. 1900년 외세의 경제수탈 징후에 맞서 민족 상권을 지키고자 설립한 마산상호회를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는 12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 동안 상공회의소는 지역기업의 든든한 동반자이자 지역경제의 버팀목으로 그 역할을 다해왔다.

산업의 기반인 안정적 전력공급을 위한 마산화력발전소 유치, 수출자유지역과 창원국가산업단지 조성은 몰론 항만, 도로, 철도 건설 등 산업인프라 확대 노력과 경남은행을 비롯한 지역기반 금융회사와 대학 설립에도 산파역을 맡았다. 또한 경남도청을 비롯한 각종 기관단체 유치, 산업기능인력 육성, 노사문화 정착, 공단문화와 메세나 활동까지 지역경제는 물론 지역사회 발전에 상공회의소 손이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이러한 성과를 내기까지는 선배 상공인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해준 근로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창원상의 창립120주년을 맞으면서 영광과 자랑보다는 그 고마움에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시민들이 보내주신 기업 사랑의 성과를 지역사회에 더 크게 공헌할 것을 약속드린다.

저성장 기조와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는 뉴노멀 시대를 맞아 우리 기업들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120년 전 민족상권을 지키기 위해 외세 열강의 침탈에 맞선 선배 상공인들의 기개를 되새겨본다. 푸르른 오월, 기업현장에 코로나 19가 물러나고 기업가 정신이 넘쳐나기를 기대한다.

한철수 창원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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