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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택시 기사가 말하는 마중물론(論)- 우광춘(창원지역 택시노동조합대표자협의회 의장)

기사입력 : 2020-05-27 20:21:12

택시를 운행하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승객들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대화의 주제는 승객의 관심사에 따라서 국제정치, 글로벌 경제, 남북문제, 정치 이슈에서부터 직장 상사 험담, 막내딸 성적 자랑 같은 소소한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다. 운전 중에 켜놓는 라디오 뉴스보다 더 생생하게 서민들의 희노애락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에는 대화 주제가 단조로워졌다. 대부분이 코로나 관련 이야기이다. 인파가 확연하게 줄어든 상점가에 내린 커피점 사장님도, 어려워진 경제 사정으로 회사가 잠시 문을 닫았다는 중소기업 부장님도, 아니면 늦은 점심을 위해 찾은 단골식당의 주인 할매도 코로나 사태로 불거진 걱정거리를 늘어놓는다. 같이 마음이 무거워지곤 했다.

다행히 최근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각종 지원금 덕에 돈이 풀리면서 여기저기 조금씩 활력을 찾아가는 것 같다.

며칠전 정부 재난지원금으로 외식에 나선다는 노부부를 한우식당 앞에 모셔다 드리고 곧바로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른 식자재상 사장님을 태운 일이 있다. 그는 창원시의 소상공인 재난수당으로 밀린 요금고지서를 정리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마중물론(論)’을 펼쳤다.

금액의 많고적음을 떠나 이런 지원금들이 움츠린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해서 동여맨 주머니를 열게 하는 그야말로 마중물 구실을 하는 게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적극 동의했다. 한편으로 개인택시 영업자들은 소상공인 재난수당의 수혜 대상인데 왜 법인 택시 종사자는 아무런 지원이 없는가 하는 생각에 창원시에 대한 섭섭함이 들기도 했다.

다음날 핸드폰이 울렸다. 창원시의 긴급 생계비가 입금됐다는 알림 문자 메시지였다. 창원시에 있는 35개 법인택시회사에서 근무 중인 운수종사자 2500명에게도 긴급 생계비가 50만원씩 지원된 것이다. 머릿속에 떠오른 한 마디, 마중물!

가라앉은 경기 탓에 자영업자, 소상공인, 중소기업 다들 힘들다 보니 이들의 발이 되는 택시업 종사자들의 일감도 당연히 줄어들었다.

역 앞에 줄을 서서 승객을 태우는 일도 예전보다 갑절은 더 기다려야 하고, 길가에서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 승객을 찾기 위해 빈 차로라도 돌아다녀야 하니 유류비 부담도 만만찮고 법인택시의 경우 10만원 안팎의 사납금도 요즘 같은 때에는 큰 부담이다.

이런 시기에 받은 지원금은 경제적으로도 고맙거니와 우리도 정책적인 배려와 지원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든든한 마음까지 들었다. 어서 기운 내서 코로나 이전의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말하자면 심리적 마중물 같았다고나 할까.

내가 받은 50만원의 마중물을 어떻게 하면 더 유용하게 쓸지 궁리해 봐야겠다. 내 소비가 누군가에게 또 다른 마중물로 여겨질 수 있도록 말이다. 우선은 오늘 퇴근 길에 긴 방학 끝에 등교를 준비하는 중학생 아들내미를 둔 동네 시장 과일 가게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달콤한 수박부터 한 통 사야겠다.

우광춘(창원지역 택시노동조합대표자협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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