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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부캐의 세계- 강지현(편집팀장)

기사입력 : 2020-05-28 20:03:15

방송인 유재석은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새로운 자아로 거듭 태어난다. 그동안 무려 7개의 캐릭터를 거쳤다. 비틀즈 멤버 링고스타의 이름을 딴 드러머 ‘유고스타’부터 히트곡 ‘사랑의 재개발’을 부른 트로트 가수 ‘유산슬’, 라면 끓일 때 섹시한 요리사 ‘라섹’, 라디오 DJ ‘유DJ뽕디스파뤼’, 하피스트 ‘유르페우스’, 치킨집 주방장 ‘닭터유’, 뮤지컬 배우 ‘유샘’까지. 놀라운 변신이다.

▼그런가 하면 개그맨 김신영은 ‘둘째 이모’ 캐릭터 ‘김다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신인가수’ 김다비가 부르는 ‘주라주라’는 ‘근로자들의 캐럴송’으로 불리며 인기몰이 중이다. 또 무명 개그맨 추대엽은 익숙한 노래들을 재미있게 카피해 부르는 ‘카피추’로 유튜브 스타가 됐다. 박나래는 과도한 의상과 능청맞은 성격이 특징인 안동 조씨 ‘조지나’를 탄생시켰다. 시청자들은 이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세계에서 웃음과 위안을 얻는다.

▼요즘 방송가는 이렇듯 ‘부캐 열풍’이 거세다. ‘부캐’는 둘째를 뜻하는 ‘부(副)’에 캐릭터의 ‘캐’를 따와 만든 말이다. 부캐는 원래 온라인 게임 용어로, ‘본래 캐릭터’의 줄임말인 ‘본캐’ 이외의 다른 캐릭터를 일컫는다. 유산슬은 유재석, 김다비는 김신영, 조지나는 박나래.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니다”며 시치미 떼는 이들을 사람들은 모르는 척 속아주며 ‘부캐 놀이’에 기꺼이 동참한다.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또 다른 자아를 갖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쓴 ‘트렌드코리아 2020’에서는 이를 ‘멀티 페르소나(multi-persona)’, 즉 ‘다중적 자아’라 명명했다. 누구나 상황과 역할에 어울리는 가면을 그때그때 바꿔쓰며 살아간다. 이제 그 가면인 ‘부캐’가 ‘또 다른 나’로 인정받는 시대가 왔다. 자신만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그 안에서 실제 삶과 조금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 이 작은 일탈이 고된 일상의 소소한 재미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진정한 나, 본캐를 잃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강지현(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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