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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94세 어머니의 말씀- 정현섭(창원시 전략산업과 과장)

기사입력 : 2020-06-01 15: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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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전 주 일요일 아침, 무작정 시골로 향했다. 그냥 국수나 한 그릇 삶아 먹고 와야지 하고 갔다. 왜소해진 체구, 바로 펼 수 없는 허리, 그래도 94세 노모는 아들 왔다고 싱크대를 부여잡고선 또 국수를 삶는다. 하지만 필자는 한 번도 힘드시니 국수 삶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힘들어도 자식을 위한 행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같이 국수를 다 먹고 날 때 즈음, 어머니는 옛날 어려웠던 이야기를 풀어내신다. 나무하고 소먹이는 일, 논농사, 밭농사, 그리고 어릴 때 제대로 먹이지 못해 미안하다는 등.

그날엔 조금 특별한 이야기를 하신다. 필자도 어렴풋이 기억하는 제삿날 이야기다. 그 옛날 제삿날이 되면 꽤 많은 동네 사람들이 필자 집을 찾았다. 당시 12시가 넘어서 조상을 모셨는데, 마을 사람들은 대개 11시 가까이 놀다가 돌아가곤 했다. 그 시절 먹을 것은 부족했지만 제삿날만큼은 조상님께 올리려고 음식을 조금 더 준비했는데 동네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찾아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그날에 준비한 음식을 동네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셨다.

그런데 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고, 조금씩이라도 나눠 먹어야 하니, 집안 가세는 더욱 빈곤할 수밖에 없었다. 없는 살림에 참 힘들었었다. 그래도 지나고 보면 그로 인해 손해 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 역시 “결국에는 나중에 다 돌아오더라”고 하신다.

요즘 우리 지방공무원 특히 읍면동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많은 것을 나눠 줘야 하는 일들이 겹치면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기업인과 노동자를 위해, 소상공인을 위해, 주민 개개인에게 재난지원금을 줘야 하는 새로운 업무들이 한꺼번에 쏟아졌기 때문이다.

불편과 힘듦, 조금 손해보는 일들이 지나고 나면 결국엔 반드시 좋게 돌아온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손해보는 일이 아니더라는 94세 노모의 말씀에서 우리 모두 힘을 얻었으면 한다.

정현섭(창원시 전략산업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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