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동서남북] 정성적 평가 필요한 남해~여수 바닷길- 허충호(사천남해하동본부장·국장)

기사입력 : 2020-06-01 15:21:22

조선시대 실학자 여암 신경준은 이렇게 말했다.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여암의 이 잠언에 언급된 ‘길’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평범한 길(road)고, 다른 하나는 확대된 의미의 길(way)이다. 후자에는 방법, 방식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뜻이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잠언을 재해석하면 난관에 맞딱뜨렸을 때 주도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남해군이 새 길의 주인이 되기 위한 대정부 설득작업을 수십년째 추진 중이다. 1998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한 ‘남해안 관광벨트 개발계획’에 ‘한려대교’가 포함된 것을 시작으로 20여 년간 남해와 여수를 연결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남해군 서면과 여수시 신덕동을 잇는 해저터널을 포함한 도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총연장 7.3㎞중 바닷길이 5.9㎞다. 사업비는 대략 63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이 사업은 당초 교량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예비타당성조사와 ‘한려대교 기본계획 수립’ 용역 결과 1조60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사업비로 B/C(비용대비편익)가 낮게 나와 난관에 부딪쳤다. 군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교량 대신 해저로 길을 내 공사비를 3분의 1로 줄이는 것이다.

지난 5월 21일 이 사업과 관련, 기재부로부터 예비타당성 조사 용역을 받은 연구진들이 남해와 여수를 방문했다. 이날 장충남 남해군수가 직접 현장 브리핑을 했다. 장 군수는 경상도의 서남단인 남해와 전라도의 동남단인 여수를 이어 동서통합과 경제적 시너지 효과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자는 논리를 폈다. 국도77호선의 마지막 남은 단절구간을 연결하는 효과도 역설했다.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여기서 연구진이 이날 제기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남해가 인구소멸위기 지자체에 포함돼 있는 상황에서 막대한 사업비를 들여 해저터널을 건설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는 지적이다. 장 군수는 해저터널이 건설될 경우 남해가 여수의 새로운 베드타운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로 즉시 응수했지만 해당 연구원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갔을지는 미지수다. 어쨌든 남해여수해저터널 건설은 60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사업비로 인해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경제성과 편익성을 우선하는 정량적 계량법에서 한 발 물러서 동서화합형 생활권 구축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동서로 단절된 국도 77호선을 잇는 마지막 공사라는 점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세상사, 숫자로만 평가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하겠느냐만, 정성적 평가가 필요한 대목도 있다. 남해가 진정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이 길의 건설에는 이 같은 평가기법도 고려해 볼 일이다.

허충호 (사천남해하동본부장· 국장)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허충호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