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맞춤 토박이말] 옛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 (129) - 어지럽다, 일삼다, 말라들다, 아우

기사입력 : 2020-06-02 08:00:39

오늘은 4284해(1951년) 펴낸 ‘우리나라의 발달 6-1’의 85쪽과 86쪽에서 캐낸 토박이말을 보여드립니다.

85쪽 첫째 줄에 ‘더구나 인종 때에’가 나옵니다. 잘 아시다시피 ‘더구나’는 이미 있는 것에 더하여 라는 뜻이 있는 말이며 비슷한말로 ‘더군다나’가 있습니다. 이어진 ‘때’는 앞서 말씀드린 바 있는 말로 요즘은 ‘시대’라는 말을 더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둘째 줄에는 ‘겪게 되어 인심이 매우 어지러웠다’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 나온 ‘겪다’는 말은 요즘에 ‘경험하다’는 말을 많이 쓰기 때문에 보기 어려운 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오는 ‘매우 어지러웠다’는 말도 ‘흉흉하다’는 말을 쓰는 곳이 많아서 낯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글을 쓰는 사람이 어떤 말을 쓰는가에 따라 읽는 사람은 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만드는 사람이 어떤 낱말을 고르는가가 참으로 값지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넷째 줄에 ‘사치 오락에 잠겨 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에는 ‘사치에 빠져 있었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 새로운 느낌이 드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쓰는 홀릭(holic)이 생각날 때 떠올려 써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다섯째 줄에 ‘정치를 돌보지 않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정을 돌보지 않고’ 또는 ‘백성을 돌보지 않고’라는 말이 익은 저에게 낯선 말이지만 이렇게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일곱째 줄에 ‘문신들과 더불어 놀기를 일삼았다’는 말에서 ‘더불다’는 토박이말과 함께 ‘놀기를 일삼았다’는 말이 참 쉬우면서도 반가웠습니다. 나라 일을 챙겨야 할 사람들이 놀기를 일로 삼았다는 것도 안타까웠지만 요즘 우리 아이들이 일삼아 놀지 못하는 것이 더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덟째 줄에 있는 ‘국고가 말라들고’에서 ‘말라들다’는 말이 참 재미있게 느껴졌고 다음 줄에 있는 ‘날로 높아가는’과 그다음 줄에 있는 ‘마음대로 부리고’, 그 다음 줄의 ‘데리고’와 그 다음 줄의 ‘틈을 타서’도 쉬운 말이라 좋았습니다.

열넷째 줄에 나오는 ‘아우’를 보니 ‘언니’가 절로 떠올랐습니다. ‘형’, ‘형님’이라는 말을 널리 쓰기 앞서 ‘언니’라는 말이 두루 쓰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아쉽기만 합니다. 그다음 줄에 나오는 ‘맞아 세웠다’는 ‘옹립하다’ ‘추대하다’는 말보다 훨씬 쉬워 좋습니다. 그다음 줄과 마지막 줄에 걸쳐 나오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였다’는 ‘위축되다’는 말을 갈음해 쓴 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86쪽 넷째 줄부터 여섯째 줄에 걸쳐 나오는 ‘백성을 더욱 괴롭히고 또 자기네들끼리의 정권 다툼을 일삼아서 서로 죽이는 일이 잦았다’에서는 ‘백성’, ‘자기’ ‘정권’을 빼고 모두 토박이말로 되어 있었습니다.

일곱째 줄에 ‘정권이 옮겨온’에서 ‘옮겨온’은 ‘이양된’이 아니어서 좋았고 여덟째 줄과 아홉째 줄에 걸쳐 나오는 ‘일어나 이로부터’와 이어진 ‘동안’ 그다음 줄의 ‘임금’까지 쉬운 토박이말이 나와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열한째 줄부터 열둘째까지 걸쳐서 나오는 ‘마음대로 임금을 폐하고 세우며’에서 ‘폐하고’는 ‘몰아내고’라고 했으면 아이들에게 더 쉬웠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셋째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나오는 ‘사람을 모두 죽이고’, ‘기르고’, ‘나라 일을 집안에서’도 쉬운 말이라서 참 좋았습니다.

(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