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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X의 값 - 박재범 (시인)

기사입력 : 2020-06-19 08:00:18

교직에 있을 때 나는 자주 학생들에게 ‘2Х와 Х 중 어느 쪽이 더 큰지’를 물었다. 상식적 수준의 수학적 개념이지만,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2Х가 Х보다 더 큽니다.”라고 대답한다.

물론 Х의 값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내 엉큼함과 얼른 겉으로 보이는 대로만 판단한 성급함이 합쳐져 나올 수 있는 잘못된 답이다. “알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거나, “Х의 값이 뭔가요?”라고 되물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바르게 알아야 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인간적 삶의 가치들을 추구하고 또 펼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세상을 살다 보면 진실과 본질이 교묘하게 가려지거나 왜곡되는 일들이 일어나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고, 개인의 삶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이 사람다운 의미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먼저 해야 하는 공부는 ‘Х의 참값’을 볼 줄 아는 힘을 키우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즉 눈에 보이는 것, 누군가 그럴듯하게 펼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숨겨져 있는 부분까지를 제대로 보고 생각하면서 세상과 마주설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진실이 은폐되고, 호도되는 일들은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세월호의 비극이 있었던 지난 2014년 교수신문에는 남을 속이려고 옳고 그름을 바꾸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인 ‘지록위마(指鹿爲馬)’가 그해의 사자성어로 발표되기도 했다.

선정 과정에 참여한 한 교수는 “2014년은 온갖 거짓이 진실인양 우리 사회를 강타했다.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시대는 2014년만이 아니었다. 2016년 ‘위대한 촛불의 힘’을 통해 그 진실을 드러내고 바로잡을 때까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위선과 거짓에 전 국민이 우롱당하고 수모를 겪어야 했던 ‘국정농단’의 참담한 시대도 지나왔다.

그리고 지금은 어떤가? 여전히 본질을 가리고 호도하려는 의도나 시도가 여기저기서 꿈틀거리고, 또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나마 어렵게 밝혀진 진실마저 끊임없이 왜곡하려들기도 한다.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거짓 정보가 마구 유포되고 있고, 사전투표가 수상하다는 의혹으로 시작된 ‘21대 총선 음모론’도 펼쳐졌다.

일부 정치 검찰의 사건, 증거 조작 의혹도 이어지고 있고,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호기로 삼아 반인도적 국가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역사를 왜곡하고 그 진실 규명과 사죄 촉구를 위한 노력의 진정성과 의의를 폄하하려는 시도도 국내외에서 일고 있다.

진실은 모든 사람들에게 한동안 가려질 수 있다.

또 일부 사람들에게는 영원히 가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히 가려질 수는 없다. 세상엔 Х의 참값을 알고 싶어 지금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박재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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