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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실질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그리고?- 감정기(경남대 명예교수)

기사입력 : 2020-06-23 20:36:33
감정기 경남대 명예교수

일전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사 먹을 수 있는 자유로 비유되는 ‘물질적 자유’를 언급하면서 세간의 관심이 잠시 달궈진 일이 있었다. 보수 정당을 이끄는 이의 입에서 나온 의외의 발언이어서 더욱 그랬다. 그가 일컬은 ‘물질적 자유’를 ‘실질적 자유’로 이해하면서, 이로써 ‘기본소득’ 논의를 공식화한 것인 양 해석하는 성급한 관측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러한 관측들의 적절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 일이 ‘기본소득’과 더불어 ‘자유’의 의미를 한 번쯤 반추해보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는 기본소득 얘기는 일단 제쳐두고 실질적 자유 얘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실질적 자유에 관한 김 위원장의 언급을 기본소득 도입 주장으로 연결시켜 이해한 것은 [모두에게 실질적인 자유를]이라는 저술을 통해 기본소득 도입의 당위성을 역설한 필리페 판 파레이스의 논의를 떠올린 때문이었으리라. 1990년대 중반에 출간된 이 책에서 그는 정의로운 사회란 모든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어 실질적 자유를 형식적 자유와 비교하면서,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고 자기소유권이 침해되지 않는 상태를 형식적 자유로, 거기에 더하여 개인이 하고 싶은 바를 행할 기회가 최대한으로 주어진 상태를 실질적 자유라고 구분하였다.

판 파레이스는 이러한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1950년대에 소개된 바 있는 이사야 벌린의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언급하고 있는데, 자신의 실질적 자유가 벌린의 소극적 자유와 관련된 측면은 있으나 소극적 자유란 표현은 별로 쓰고 싶지 않다면서, 적극적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구분하는 것도 개념의 혼란을 초래한다고 보아 수용할 수 없다고 피력한다. 그러나 이런 그의 판단은 벌린의 개념 구분, 특히 적극적 자유의 의미에 대한 그의 제한된 이해 때문으로 읽히는 바, 시야를 넓혀 봤을 때, 그의 형식적 및 실질적 자유는 각각 벌린의 소극적 및 적극적 자유에 대응된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벌린의 두 가지 자유는 국내에서 ‘부정적’ 및 ‘긍정적’ 자유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번역어 여하를 떠나 이 두 개념은 오늘날의 정치사회 현실을 논의하는 데에 간명하면서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하여 널리 인용돼 왔다. 이때 소극적 자유는 부당한 외부의 억압이나 제약 등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가리키며, 적극적 자유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취득하여 누릴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빵’ 얘기로 돌아가자면, 빵집에 드나드는 것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허용돼 있다면 모두에게 소극적 자유가 부여된 셈이며, 그 빵을 먹고 싶을 때 사 먹을 수 있으면 적극적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식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적극적 자유를 누릴 여지를 넓혀주어 고루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개입하여 형편이 나은 사람들의 세금부담을 늘리는 식으로 후자의 소극적 자유 일부를 유보하게 하는 것이 오늘날 연대사회의 작동양태이다. 건강하고 젊었을 때 내키지 않더라도 보험료 부담을 지게 하는 방식으로 소극적 자유를 제한하여, 후일에 건강하고 안정된 삶을 누리는 적극적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것이 사회보험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렇게 봤을 때, 벌린의 적극적 자유 개념은 판 파레이스의 실질적 자유와 맥이 닿는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와 같은 개념 간의 관계를 심도 있게 따지는 일은 학자들의 몫이겠고, 보통의 시민들께는 다음의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길 권하고 싶다.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적극적 혹은 실질적 자유를 키워주기 위해 국가가 나서 나의 소극적 자유 일부를 좀 더 유보하도록 요구한다면, 나는 이에 협조할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가?”

감정기(경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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