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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소녀상 해체를 외치는 한국인- 정오복(문화생활팀장)

기사입력 : 2020-07-01 20:15:49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자료 제출을 거부한다.” 며칠 전 김해의 한 병원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주목을 받았다. “살다 보니 별 희한한 요구가 있다”로 시작하는 글에서 A 병원장은 “우리 병원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은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른 것이다”고 항변했다. ‘긴급’이란 제목을 붙여 전국 시·군·구에 내린 공문 ‘서류(자료) 제출 요구목록’을 보면 예산 세부내역, 비용모금 여부, 저작권자·저작권 지불 비용은 물론, 관련 행사·캠페인·홍보 내용과 비용, 정의기억연대·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주고받은 문서 일체 사본 등 10가지 정도에 달한다. A 병원장의 강단 있는 대응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소녀상 설치 운동 위축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앞선다.

소녀상 설치 운동은 이미 타격을 받은 것 같다. 지난 5월 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윤미향 의원 논란’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회계 처리와 기부금 사업 등에 대한 의혹은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국민들에게 큰 생채기를 남긴 것이 사실이다.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데, 수사 결과에 따라 진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지루한 재판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 과정에서의 소모적인 충돌은 물론, 수년 뒤 최종 판결이 나더라도 어느 한쪽은 수긍하지 못할 게 뻔하다. 결국 양분된 여론은 역사적 정의는 아랑곳 않고, 정치적 유·불리에 이용당할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시민운동, 더욱이 한-일간 역사문제를 다퉈온 시민단체에 대한 의혹 자체만으로 운동의 본질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셈이다. 이 같은 우려는 벌써 노골적으로 현실화되고 있다.

1992년 1월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 방한을 계기로 시작한 수요집회에서 2주 전부터 기이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이날 정의연과 보수단체 간 고성이 터져 나왔다. 정의연 회원들은 “일본 정부는 즉각 사죄하라”를 외쳤고, 보수단체 참가자들은 “윤미향 도둑X, 정의연 해체하라”로 대응했다. 그러다 소녀상을 지키겠다는 ‘반아베 반일 청년학생공동행동’ 대학생에게 ‘빨갱이’, 보수단체 회원에게는 ‘토착 왜구’라는 비난까지 쏟아냈다.

일각에선 윤 의원의 불법성 여부와는 별개로 도덕적인 문제만으로도 국민에게 회복하기 힘든 배신감을 줬다는 지적을 한다. 따라서 보수단체의 정의연 해체 요구는 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평화비’인 소녀상을 일본식 비칭인 ‘위안부상·성노예상’이라 지칭하며, 소녀상 해체와 수요집회 중단을 주장하는 것까지 수용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이 지난 5월 20일자 ‘반일 집회 중단과 …’란 논평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여 반일 증오의 상징인 위안부상을 즉시 철거하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일본 극우와 맥을 같이 하는 주장을 과연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을까.

보수의 핵심 가치는 민족적 자존심과 민족 이익을 우선하는 민족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보수는 어떤가. 정신적 하인의식에 따른 맹목적 숭미(崇美)와 친일(親日)이 체화됐다는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을까.

정오복(문화생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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