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촉석루] 의문에 대한 단상- 양재성(법무사)

기사입력 : 2020-07-06 20:06:04
양재성 법무사

과학이나 철학의 위대한 업적은 의문(why)에서 출발한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상에 대한 의문을 푸는 과정에서 사회가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 의문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에 다양하게 걸쳐 있다.

사람은 날 때부터 누구나 평등하다지만 실상은 속칭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뉜다. 스펙 쌓기도 부모의 능력이 절대적이다. 그러한 배경을 커튼 뒤에 감춘 채 아주 공정하게 경쟁을 치른다. 예정대로 금수저가 선택된다. 평등하게 기회를 제공하고 공정한 경쟁과정을 거쳐 선택된 결과이므로 지극히 공평하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자조와 분노가 의문을 덮고 남는다.

얼마 전 코로나19 사태로 부각된 모 종교단체가 떠오른다. 포교방법은 논외로 하고 엄청난 교인의 숫자에 모두 놀랐다. 천국의 자릿세 같은 황당한 설교에 이성적인 의심이 들지 않았을까 의문이다. 위대한 종교의 힘 이외에 달리 설명이 어렵다.

최근 공·사기업을 막론하고 정규직 전환을 두고 시끄럽다. 비정규직은, 서로 같은 일을 하므로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반면, 피나는 노력과 치열한 경쟁을 거쳐 얻은 결과이므로 대우도 달라야 공평하다는 것이다. 양 쪽의 입장이 이해되지만 근본적 의문은 남는다. 그 밖에도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여기서 평등, 공정, 공평이란 게 무엇인지 의문이다. 사전적 의미로 공평은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요, 공정은 능력에 따라 선택받는 과정이며, 평등은 모두에게 같은 결과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공정이 능력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공평은 능력의 차이를 외면하면서 결과의 차이는 인정하고, 평등은 결과의 차이마저 부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소 어렵지만 수긍이 간다. 대세는 평등한 것이 가장 공정하고 공평한 최선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제4의 물결이 되어 쓰나미처럼 밀려든다. 자기모순으로 임계점에 달한 시장경제가 늪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모든 의문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까지 고통이 따른다. 다들 힘들겠지만 겪어야 할 과정이 아닐까 싶다.

양재성(법무사)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