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경남시론] 국산 자동차 디자인이 일본보다 좋다- 박민원(경남창원스마트산단 사업단장)

기사입력 : 2020-07-07 20:12:18
박민원 경남창원스마트산단 사업단장

1998년으로 기억한다. 물론 일이년의 오차는 있을 수 있다. 지금은 다소 무의미한 고유명사지만 도쿄에는 아키하바라, 오사카에는 덴덴타운이라는 전자상가가 있는데, 그곳을 다녀온 교수 중 한 명이 나에게 이렇게 물어 왔다. “어제 덴덴타운에 다녀왔는데, 삼성과 엘지에서 LCD 디스플레이도 만드네? 품질은 모르겠지만 일본 전자상가에 나와 있는 걸 보면 한국의 기술력도 많이 따라왔군.”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의 전자기술은 세계 최고였다. 전자공학이라는 학과를 만든 곳도 일본이고 액정 디스플레이를 최초로 만든 곳 역시 일본이었다. 일본의 전자기술이 전 세계를 석권했었다. 불과 20년 전의 일이다. 마음속으로 한국 전자기술이 빨리 일본을 따라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과연 가능할까라는 마음도 함께 들었다. 기우였다. 무서운 속도로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고, 어느 누구도 상용화까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유기박막 디스플레이(OLED)도 세계 최고 기술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물론 중국의 추격도 주시할만한 대목이다. 일본의 기술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대변된다. 하나는 기초과학 기술을 기본으로 하는 화학 및 각종 재료 관련 소재기술, 다른 하나는 응용공학 기술이다. 응용공학의 결정체가 바로 자동차와 제조IT 기술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기술의 선두주자가 바로 반도체 기술이다. 이 중 제조IT 기술은 이제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고 앞서나간 지 오래다.

바야흐로 자동차 분야에서도 20년 전 전자기술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마음이 느껴진다. 20년 전 현대자동차가 일본시장에 진입해 처참한 패배의 쓴잔을 맛보고 퇴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닛산이 한국시장에서 철수하고, 신형 제네시스 자동차 디자인이 일본 렉서스 자동차보다 우수한 디자인 호감도를 만들어 간다는 것은 작은 변화지만, 큰 울림을 준다.

영원할 순 없다. 영원을 꿈꿔서도 안 된다.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밖에 없다고 한다. 지난 역사를 보며 수없이 많은 것을 느끼지 않았던가? 200여년 전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서양문물을 최대한 빨리 받아들이자고 이야기했지만, 조선은 영원할 것이라 믿고 변화하지 못하여 100년 후 일본에게 나라를 잃어버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다시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변화하려고 몸부림치는 반면, 일본은 그 자리에 멈춰버린 것 같다. 일본이 하루아침에 어려운 시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따르지만, 지금과 같은 방향대로 계속 간다면 머지않아 일본은 많은 후회를 하게 될 것 같다. 1990년대 코끼리표(죠지루시) 밥솥을 산 채 공항 출국대를 빠져나오던 많은 일본 출장자를 기억할 것이다.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2000년대 초반 렉서스자동차의 디자인을 보고 부러워하며 선망했던 시대도 이제 지나갔다. 언제부터인가 일본 관광지마다 한국 사람이 넘쳐나고, 저녁값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구나라고 느끼게 된 것도 이미 몇 년 전 일이다. 자만하여 냉철함을 잊어서는 안 되지만, 지나치게 위축되어 앞서감을 주저하는 것은 더욱 안 될 일이다.

남은 것은 이제 소재 분야다. 얼마 전 재료연구소는 재료연구원으로 승격돼 본격적인 재료분야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인재양성을 포함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하겠다. 700년 넘게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가 영국보다 잘 살게 된 날을 기념하는 것(지금은 두 나라의 국민소득이 3만불 정도 차이남)을 보면 마음에 각인된 감정은 쉽게 사라지기 어려운가 보다. 앞으로 3년에서 5년 내에 우리는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을 앞지르리라 예상해 본다. 동남아시아 국가로부터 곡물을 원조 받아 보릿고개를 넘긴 나라가 5000만명 이상 아시아 국가 중 가장 잘 사는 나라로 발돋움하게 될 날을 희망해본다.

박민원(경남창원스마트산단 사업단장)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