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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 ‘창원 관광의 길’] ④ 나 홀로 창원에서 역사탐방

걸음걸음마다 역사… 창원 근현대 한바퀴

3.15의거·부마민주항쟁 터전이 된 마산

기사입력 : 2020-07-16 10:11:18

유서 깊은 마산·창원·진해 지역이 통합한 창원시에는 고대부터 근대, 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의창구 동읍 다호리 고분군과 마산합포구 진동리 유적지는 전국에서 손에 꼽히는 선사시대 유적지다. 진해구 웅천·웅동 지역은 세종 때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통제하기 위해 쌓은 읍성과 임진왜란 때 축조된 왜성이 있고, 이순신 장군이 왜 수군과 싸워 승리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진해 구도심에는 일제강점기 때 지은 근대식 건축물이 곳곳에 남아 있다. 마산 지역은 3·15의거와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민주화 운동 발원지다. 이에 허성무 시장은 취임 후 ‘민주화 성지 창원’ 도시 브랜드 확립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왔다. 그 결과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이라는 성과와 더불어 ‘창원 민주주의 전당’ 건립을 위한 국비도 확보했다.

멀리 가기 꺼려지는 요즘, 동네 산책하듯 가볍게 나서는 역사탐방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산3·15의거 발원지
마산 3·15의거 기념탑
마산 3·15의거 기념탑

◇곳곳에 스민 그 날의 함성… ‘민주화 성지’ 마산= 마산은 조선 후기 대동법 시행으로 당시 마산포(현 마산합포구)에 쌀을 보관하기 위한 조창이 설치되면서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창동의 명칭도 조창에서 유래하는데, 덕분에 창동·오동동 일대는 1990년대 후반까지 도내 최고 번화가로 꼽혔다. 이 일대는 3·1만세운동으로 대표되는 항일 현장이자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시발점이 된 역사성 짙은 곳이다.

오동동 문화광장은 1960년 이승만 정권을 물러나게 한 4·19혁명을 가져온 3·15의거가 시작된 곳이다. 위안부 소녀상 인근 바닥과 오른편 상가 건물(옛 민주당 마산시 당사) 뒤편에서 이곳이 ‘3·15의거 발원지’임을 알리는 상징물을 만날 수 있다.

불종거리는 마산 시민들이 부정선거 규탄을 외치며 행진했던 구간 중 하나다. 건너편 창동치안센터는 그날 밤 유혈 사태가 벌어진 남성동 파출소가 있던 자리다.


무학초등학교 총격 담장

이곳에서 합포구청(옛 마산시청, 당시 부정선거 개표장)으로 이르는 도로 중심에 우뚝 솟은 흰색 조형물은 3·15의거 기념탑(창원시 근대건조물 제6호)으로 ‘민주화 성지’ 마산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여기서 약 100m 떨어진 무학초등학교 담장에는 당시 경찰이 쏜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마산의료원(옛 도립마산병원)은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다. 이 사건으로 마산 시민의 분노가 전국으로 퍼지면서 4·19혁명의 불씨가 됐다.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서 추모 중인 허성무 시장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서 추모 중인 허성무 시장

신포동 대한통운 앞 도로변에 있는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경상남도 기념물 제277호)를 ‘4월혁명 발원지’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창원시는 이 근처인 마산항 서항지구 내 약 9000㎡ 부지에 지상 4층 규모 ‘창원 민주주의 전당’을 2024년까지 건립한다.

경남대학교는 1979년 10월 18일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의 발원지로, 교내 월영지 부근에 부마민주항쟁 시원석이 있다.

마산의 민주화 운동 역사를 면밀히 들여다보려면 국립 3·15민주묘지 내 기념관으로 가보자. 서슬 퍼렇던 시절 불의와 부정에 맞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그날의 함성을 고스란히 전한다.


창원시 근대건조물 제4호 진해 ‘문화공간 흑백’

◇일제강점기 건설된 군항도시… ‘근대건축물 박물관’ 진해= 군항도시 진해 구도심은 살아있는 근대건축물 박물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마치 시대극 속에서 튀어나온 듯 오래된 건물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들이다.

일본은 러일전쟁(1904~1905) 승리 후 한반도를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한국인 마을을 강제 철거하고 진해에 군항을 지었다. 1922년부터 군 병력을 따라 일본인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시가지가 형성됐다. 세 개의 로터리 주변으로 관공서와 상업 건물들이 들어섰고, 일부는 현재까지 남아 근대문화유산이 됐다.

북원로터리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창원시 근대건조물 제1호)은 전국 최초로 건립된 충무공 동상으로 1952년 세워졌다. 6·25전쟁 당시 국난 극복을 위해 국민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으로 제작됐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매년 봄 열리는 진해군항제는 충무공 동상을 세우고 추모제를 지내면서 시작됐다.

근대로 떠나는 여행 명소는 중원로터리 주변에 모여 있다. 진해에서 ‘흑백 다방’하면 다 안다는 문화공간 흑백(창원시 근대건조물 제4호)이 먼저 눈에 띈다. 1912년에 지어진 목조 건물로 1960~70년대 진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자 이중섭, 유치환, 김춘수, 서정주 등 걸출한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현재도 공연과 전시를 겸하는 지역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00년 전 진해를 제대로 알려면 진해군항마을 거리에 가보자. 1912년 지어진 군항마을 역사관은 우리나라 근대사를 대변하는 350여 점의 기록물을 보존해 전시했다. 일제강점기 일반 상점에서 광복 이후 노인정으로 사용되다 2012년 11월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주변에 해군들의 군복에 마크와 이름표를 달아주는 마크사와 수선집이 여럿 있어 군항도시 특유의 분위기를 더한다.

다시 중원로터리 방향으로 걷다 보면 역사와 맛이 공존하는 옛 건물 두 채가 보인다. 붉은 지붕의 3층짜리 건물은 육각집으로, 일제강점기 상류층이 드나드는 고급 요정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한식당으로 운영 중이다. 맞은편에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지인 원해루는 일제강점기 사진관 겸 시계점으로 쓰이다 광복 후 중국 음식점으로 개업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장제스 전 대만 총통이 회담을 마치고 식사를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진해 장옥거리

남원로터리에 가면 광복 이듬해 백범 김구 선생이 진해를 방문해 남긴 친필시비(창원시 근대건조물 제2호)가 있다. 이 인근에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일제강점기 고급주택과 서민주택이 공존한다. 대표적인 고급주택은 당시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이 살던 기와집을 곰탕집으로 바꿔 영업 중인 선학곰탕(국가지정 등록문화재 제193호)이다. 1912년에 지었지만 여전히 일본 특유의 얇은 부재들이 그대로 남아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반면 서민주택이 모인 장옥거리에는 2층짜리 일본식 건물 여섯 채가 길게 이어진다. 1층은 상가, 2층은 살림집으로 쓰였던 이곳에 지금은 도장집, 인쇄집,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진해우체국(국가사적 제291호)

진해에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우체국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 있다. 이국적인 정취가 묻어나는 진해우체국(국가사적 제291호)은 1912년 건축 당시 진해에 주둔했던 러시아 공사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2000년까지 우체국 업무를 봤으나 지금은 내부공개하지 않는다. 영화 ‘클래식’에서 손예진이 전보를 보냈던 곳이기도 하다.

제황산 정상에는 일본의 러일전쟁 전승기념탑이 있었으나 해방 후 헐고 해군 군함을 상징하는 진해탑(창원시 근대건조물 제3호)을 세웠다. 정상까지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면 진해 시가지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해설사가 동행하는 진해 근대문화역사길 투어에 참가하려면 진해구청 문화위생과(055-548-4081)로 전화 또는 창원관광 홈페이지(culture.changwon.go.kr)에서 예약하면 된다.

이종훈 기자 leej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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