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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굴- 차상호(뉴미디어팀장)

기사입력 : 2020-07-21 20:15:50

알쓸신잡 시즌2에 강원도 사북탄광편이 나온다. 동원탄좌 사북영업소 뒤편으로 보이는 것은 스키장이다. 출연자들은 이 곳을 박물관이 아닌 유적지라고 표현했다. 그 때 사용했던 목욕탕이며 라커룸도 그대로였고, 역대 대통령들이 하사한 작업복도 전시돼 있다. 갱도도 그대로고 퍼낸 돌로 쌓은 산도 그대로다. 화산폭발로 묻혔던 폼페이오가 로마시대에 그 모습 그대로 박제돼 발견된 것처럼 사북탄광의 시간은 2004년에 멈춰져있다.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제주에서 열린 사건기자 세미나 때 제주 4·3기념사업회 활동가들의 가이드로 4·3의 상흔이 남아있는 곳을 둘러봤다. 영화 ‘지슬’의 배경이 된 동굴에도 갔다. 진압군(국군)을 피해 도망간 곳은 동굴. 입구는 허리를 숙이는 정도가 아니라 기어 들어가야 하는 수준이다. 동굴 초입에 제법 넓은 공간이 나오지만 전부가 아니다. 다시 한 참을 기어 들어가면 진짜 숨어지냈던 곳이 나온다. 당시의 식기가 아직도 남아있다. 동굴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제주에서 만난 또 다른 굴은 벙커와 격납고다. 제주에는 넓은 들판이 두 곳 있는데 하나가 지금 공항이 있는 곳(정뜨르)이고, 다른 하나는 알뜨르다. 아래에 있는 들판이란 뜻이다. 지금은 공군 소유지만 일제 때 지은 활주로가 여전히 남아있다. 알뜨르에는 비행기를 넣어두는 격납고가 많다. 아카톰보 모형도 서 있다. 무기와 탄약 등을 보관했을 것으로 보이는 지하벙커도 있다. 자신들의 전쟁을 위해 제주를 전쟁기지로 만든 일제는 수많은 조선인들의 희생으로 벙커와 격납고를 지었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가 본 굴은 언양 자수정 동굴이나 와인터널 같은 곳이 전부였다. 한여름에도 추운 곳, 석주며 석순이며 자연이 빚은 놀라움을 느끼는 것에 그쳤다. 이제 좀 컸으니 아이들과 함께 사북에도 가보고 싶다. 사북항쟁 이후 신군부에 의해 짓밟힌 역사를 아이들과 공유해야겠다. 제주의 자연풍광도 좋지만 아픈 역사의 현장도 알려주고 싶다. 다크 투어리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이 가진 빛과 어둠을 함께 배우면서 한 발짝 더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차상호(뉴미디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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