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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5만원권 실종 - 이준희 (사회2팀장)

기사입력 : 2020-07-28 21:24:54

‘5만원권 수급 부족으로 5만원권 지급이 불가하오니 고객님들의 양해 바랍니다.’ 최근 경남은행 일부 지점 출입구에 붙은 안내문이다. 5만원권이 요즘 귀하신 몸이 됐다. 일부 ATM기에서는 5만원권을 뽑을 수도 없다. 은행에서는 가능하면 고객들에게 5만원권보다 1만원권을 사용을 권하고 있다. 상황은 경남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5만원권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

언제부터 5만원권이 귀하신 몸이 됐을까?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안전한 현금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불붙으면서 5만원권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낮은 금리도 한몫을 하고 있다.

금리가 0%대로 떨어지면서 돈을 은행에 넣어봤자 이자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안전한 자산인 현금을 집에 보관하려는 사람들의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실제 국내 대표 금고 제작 업체의 상반기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30%로 늘었다고 한다. 국내 금고 제작 업체로 꼽히는 D사는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 대비 7.1% 늘어난 201억800만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달성했고, 전체 금고 판매량도 20%가량 증가했다. S금고의 지난해 매출액은 71억4700만원으로 같은 기간 36% 급증했다.

금고업체는 “이 같은 수요 증가에 경기 불황으로 실물 자산 수요가 증가하면서 도난이나 화재로부터 실물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하려는 심리가 강해진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현금을 은행에 넣으면 과세당국으로부터 추적을 당할 수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해 현금으로 집에 보관하는 것이라는 말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사태 등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돈이 안 돌고 있는 것도 문제다. 돈을 뽑아 가려는 사람은 많은데 번 돈을 은행에 다시 집어넣는 자영업자는 크게 줄었다. 이를 반영하듯 은행에 돈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올 상반기 한국은행은 역대 최대 규모인 13조9650억원의 5만원권을 발행했지만 같은 기간 회수된 5만원권은 4조5899억원으로 32.9%에 그쳤다고 한다. 이는 한은이 5만원권을 발행한 이듬해인 2010년 이후 상반기 기준으로 2014년(28.1%)에 이어 두 번째로 낮은 수치로 평가됐다. 그만큼 5만원권이 시중에서 활발하게 돌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일부 중소기업이나 부유층에서 증여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5만원권을 모아 자식에게 주려는 ‘꼼수 증여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부모가 5만원권 현금을 자녀에게 여러 차례 나눠서 물려주면 과세당국이 적발하기란 쉽지 않다. 자녀들이 현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현금영수증이라도 발행하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누가 어디에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알 수조차 없는 실정이다. 2009년 6월 5만원권을 처음 발행할 당시 이런 부분을 전혀 우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만약 상황이 악화된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이런 이유로 일부에서는 “현모양처의 대명사 격인 신사임당이 아이를 망치고 있다”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5만원권 지폐의 초상인물인 신사임당을 빗댄 말이지만 말 속에 깊은 뜻이 담긴 듯하다. 집 나간 신사임당이 빨리 돌아와야 경제가 되살아날 텐데. 언제쯤 다시 돌아올지 정말 걱정이다.

이준희 (사회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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