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세상을 보며] 스포츠인은 공멸을 원하나 - 이현근(체육팀장)

기사입력 : 2020-07-29 21:13:04

감독과 동료 선배들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진 고 최숙현 선수의 선택은 죽음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스포츠계의 비리와 폭행, 성추행 등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접해왔고, 그때마다 인권을 말하고 근절과 변화를 외쳐왔지만 황망한 사건은 끊임없이 재발하고 있다.

일부 스포츠인들은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선수만 14만7000명에 달하고 지도자까지 포함하면 이보다 훨씬 많아 바람잘 날이 없을 수밖에 없고, 세상 곳곳에서 갑질과 폭력, 성추행, 비리 등이 만연해 있는데 힘없는 체육계만 물고 늘어진다는 변명도 한다.

문제는 변명이라고 하기에는 고질적이라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 스포츠는 일제 때 도입되면서 운동을 즐기는 올림픽정신이 아니라 고대 검투사들처럼 내가 죽지 않으려면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적용됐다. 성적을 내기 위해 감독은 왕이고 선배는 행동대장이며, 선수들은 영혼을 버리고 오직 1등을 위해 달리고 뛰어야 했다. 이를 위해 확실한 위계질서가 필요했다. 학부모들은 ‘갑’인 감독 생각에 따라 미래가 걸려 있다 보니 자식이 폭력에 짓밟혀도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감내해야 했고, 뒷돈을 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감독은 선수들의 훈련비는 물론 연봉까지 자기 돈처럼 손을 대기도 했고, 성추행도 비일비재했다. 관행이었다는 말로 슬쩍 넘어가기에는 뿌리가 지나치게 깊다.

국내 스포츠는 축구, 야구, 농구 등 일부 인기 종목은 프로화되었고, 스포츠 산업도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살짝만 안을 들여다봐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가장 인기가 높은 프로야구도 상당수 구단이 적자를 보고 있으며, 프로축구는 1, 2부리그 22개 구단 가운데 시·도민구단이 절반이 넘는 13개(상주 포함)에 달한다. 매년 막대한 예산 대부분을 시나 도에 의존해 세금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뜻이다.

엘리트선수 양성을 위해 1962년 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에는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이 직장운동부를 설치할 것을 명시하면서 전국 17개 시도와 228개 시군구 대부분이 1~2개씩 이상의 직장운동부를 운영하고 있다. 직장운동부들은 예산 전액을 지자체의 지원으로 운영하고 있어 감독이나 선수 선발 때 해당기관이나 체육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성적이 나지 않을 경우나 지자체장의 스포츠 관심 여부에 따라 매년 팀 해체와 창단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엘리트 체육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에 의존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지자체가 손을 놓으면 사실상 엘리트 체육은 순식간에 무너지는 체계다. 더구나 최근 정부의 정책은 생활체육 활성화에 더 무게를 두고 있어 갈수록 엘리트 체육의 위기는 가속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스포츠인들은 위기감을 모른다. 반성과 인성교육은 형식적이고, 여전히 성적만을 내기 위한 스승의 강압적인 지도방식이 대물림되고 있다.

‘내 스스로의 적은 나’다는 말이 있다. 자신을 이겨내지 못하면 힘겨운 인생길을 가야 한다. 세계에서 10대 스포츠 강국이라 자부하는 국내 엘리트 체육이지만 모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집에 불과하다. 스포츠인끼리 머리를 맞대고 살 길을 찾아도 헤쳐나가기 힘든 상황이다. 스포츠인들은 진정 공멸을 원하는가.

이현근 (체육팀장)

  • 이현근 기자의 다른 기사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