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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발코니 예찬- 김유경(경제팀 기자)

기사입력 : 2020-08-06 20:19:36

3살 무렵 아파트에 입성했다. ‘맨션’이라는 고풍스러운 이름을 가진 아파트였고, 우리집은 5층이었으나 이상하게도 605호가 되고마는, 놀이터에서 ‘엄마!’를 외치면 각 집의 엄마가 일제히 창을 내다보던, 1980년대 풍습이 녹아 있는 아파트였다. 그리고 그 집엔 발코니가 있었다. 호접란과 선인장 등 식물들이 모여 살고, 도시를 감싼 긴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지던 발코니.

▼발코니는 아파트가 서서히 늘어나던 1960년대 우리나라 건축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아파트의 폭발적 증가에 따라 보편적인 건축양식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곳은 각 가정의 모습만큼이나 다양하게 활용됐다. 창고이기도, 장독대이기도, 식물원이기도, 빨래터이기도 했던 발코니. 발코니는 전통가옥의 마당, 주택의 옥상이 가진 일정 기능을 맡고 있는 듯 보였다.

▼2005년 발코니 확장 합법화가 이뤄졌다. ‘확장’은 신축 아파트에 천편일률적으로 도입됐고 안과 밖, 가정과 사회, 일상과 자연을 자연스레 이어주던 공동주택의 접점, 발코니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발코니는 실내로 합병됐다. 충분하지 못한 일조량에 빨래는 곧잘 눅눅해졌고, 식물은 시들었고, 이웃과의 단절은 가속화됐다. ‘확장’은 드넓은 바깥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둔 뒤 폐쇄해버린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코니에 대한 담론이 재점화 되고 있다. 대전, 평택 등 몇몇 지자체들은 아파트 각 가정의 발코니에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발코니 콘서트’를 진행했다. 집을 보러 다니는 TV프로그램에서 멋진 발코니가 있는 집이 나오면 출연진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유럽연합에서 우수 현대건축물에 수여하는 ‘미스 반데어로에 건축상’ 지난해 수상작은 프랑스 보르도의 한 아파트였고, 이는 노후 아파트 3개 동 전면에 발코니를 설치한 작품이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팬데믹 장기화 국면에서 발코니는 ‘일상에 또다른 가능성을 던져줄 공간’으로 조금씩 재조명되고 있다.

김유경(경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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